충청도 상공에 터트리면 ‘대한민국 OFF’ … 인명살상 없지만 핵무기급 파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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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25일 북한 인민군 75주년 기념식의 퍼레이드에 등장한 노동미사일. [중앙포토]

정보기술(IT) 강국임을 자랑하는 한국이 농협 사태에서 북한의 일회성 해킹에 무너질 만큼 취약함을 드러낸 가운데 북한의 전자전 핵심 무기인 전자기펄스(EMP)탄에도 군과 정부는 거의 무방비인 것으로 드러났다. 군은 북한이 EMP탄을 보유할 것으로 분석하면서도 대책은 ‘개념만 연구하는’ 거의 초보 수준이다. 아울러 EMP 공격 시 마비될 전력망을 담당하는 한국전력공사도 미국 전문가의 대책 논의 제안에 무관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이 한국 IT를 공격하는 핵심 수단인 EMP탄은 핵탄두나 핵탄두를 개조한 폭탄을 대기권에서 폭발시키는 것이다. 이때 발생하는 충격파(E1-HEMP)와, 핵 분열 시 대량 발생하는 감마선이 공기분자와 충돌해 발생하는 자기유체역학 현상(E3-HEMP)이 민·군용 전자 장비와 전기·통신망에 충격을 가해 영구 손상시킨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2009년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하면서 사업비 1000억원을 투입, 청와대와 군사기지 등 국가전략시설에 EMP 방호시스템을 설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었다. 그러나 이후 진전은 없었다.

지난 3월 중순 국내의 EMP 관련 연구를 맡고 있는 국방과학연구소(ADD)의 4기술연구본부 2부의 직원이 미래연합 송영선 의원실을 찾았다. EMP 대책 브리핑을 위해서였다. 한 시간 정도 설명을 했다. 송 의원은 “이들은 ‘한국군의 EMP 연구는 전방 군단지휘소가 공격받을 경우 어떻게 보호할지 ADD에서 기본적인 개념 연구를 하는 게 전부’라고 했다”며 “주로 EMP의 기본 원리나 개념에 대한 설명을 했다”고 했다.

군 지휘소 보호를 위한 개념 수준의 연구 외에 EMP 공격 시 더욱 광범위한 치명타를 입을 수 있는 발전소·인터넷·방송·전선망·통신망 등과 같은 민간 사회적 인프라에 대한 영향 분석과 대책은 없다. 군 대응은 매우 부실하고 민간 부문 대응은 없는 셈이다. ADD는 ▶4본부가 EMP 대책과 EMP탄 개발 ▶7본부가 재래식 EMP탄을 항공기에 장착해 북한을 공격하는 문제를 연구 중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EMP 전문가 윌리엄 래더스키 박사는 본지와 두 차례에 걸친 인터뷰에서 “한반도 상층에서 북한이 EMP 폭탄을 터트리면 북한보다 남한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주한 미군의 전자 장비도 타격을 받는다”고 심각성을 지적했다. 민·군사 분야의 장비가 북한에 비해 훨씬 더 많이 IT화돼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고고도에서 터트리면 피해가 훨씬 커진다”며 “E1-HEMP는 가전제품에, E3-HEPM는 전기·통신망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로 경제도 파괴될 것”이라고 했다. 래더스키 박사는 미 하원군사위원회가 2005년에 만든 ‘EMP소위원회’의 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국제전기공학위원회(IEC) 위원장이다. EMP 관련 논문·보고서를 400편 이상 썼다.

한국에는 EMP의 파괴력 및 영향과 관련돼 공개된 분석이 없으나 2008년 7월 21일자 미국의회보고서(CRS 리포트)는 “2007년 9월 볼티모어 세이지 정책 그룹과 IAN 연구소가 볼티모어·워싱턴·리치먼드가 EMP 공격을 받은 것으로 가정해 피해를 추계한 결과 심각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공개했다. 40~100㎞ 상공에서 폭발하면 피해 반경이 800㎞이며, 전력·통신망은 최대 50%가 파괴되고 경제는 25%로 위축된다. 피해 금액은 7700억 달러로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7%에 해당한다. 핵폭탄으로 굳이 파괴하지 않아도 사실상 초토화된다는 얘기다.

또 미 의회가 북한·이란의 EMP 공격을 상정해 분석한 결과 400㎞ 상공에서 1~2메가톤급 이상의 EMP탄이 터지면 미 대륙 절반에 걸쳐 전자 장비가 파괴되고 수조 달러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컴퓨터·차량의 전자 시스템 파괴는 물론 송전 시스템도 고장 나 1년 이상 정전이 발생하며, 산업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예상했다. 컴퓨터 파괴는 사회 시스템을 파괴하고 항공기·철도·차량의 가동 정지로 이어져 물류가 중지될 것으로 봤다. EMP 폭발 몇 주 내에 굶어 죽는 사람들이 발생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을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다. 북한이 1t급 소형 핵폭탄을 EMP탄으로 개량, 노동미사일에 장착해 함흥·원산쯤에서 발사하면 충청도 100~150㎞ 상공에서 폭발시킬 수 있다. 글로벌 시큐리티의 노동 미사일 분석 자료에 따르면 노동미사일에 1t 핵탄두를 장착하면 사정거리가 1300㎞, 1.6t급을 달면 600㎞다. 북한이 핵폭탄을 1.5t으로 소형화, 노동미사일을 사용해 충청도 상공에서 20kt급 EMP 핵폭탄을 터트리면 반경 100㎞ 내에 EMP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이상현 박사는 지적한다. (정세와 정책, 2009 년 8 월호 ‘국방개혁 2020 조정과 평가’) 엄청난 전자기 쇼크가 수도권·강원도·충청도, 경북 북부 지역을 강타, 대부분의 변압 시설과 전자 부품이 파괴된다. 미 정보당국과 국정원은 북한의 1t급 이하 핵무기 소형화는 2012~2013년께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북한의 EMP 제조에 러시아 기술이 흘러들어갔다는 러시아 측 증언도 있다. 래더스키 박사는 2010년 7월 스페이스 리뷰지에 “러시아의 전직 장성들이 EMP위원회에서 ‘러시아로부터 북한으로 두뇌 유출이 돼 북한이 러시아의 수퍼EMP 제조 능력을 갖게 됐을 것’이라고 증언했다”고 공개했다. 수퍼EMP는 메가톤급 EMP보다 4배 이상 강력한 전자기 충격파를 만든다. 박사는 “러시아 장성들은 두 번에 걸친 북한의 핵 실험 중 나온 ‘쉬익’ 하는 소리는 수퍼EMP에서 발생할 것으로 기대되는 소음”이라고 했다. 2010년 7월 미 하원 군사위 로스코 바틀릿 의원(공화·메릴랜드주)도 “러시아·중국·파키스탄 과학자들이 북한에서 러시아가 설계한 수퍼EMP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EMP무기를 개발·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MP의 피해가 이처럼 현실적이면서 크기 때문에 미국 의회는 2005년부터 EMP위원회를 통해 논의했으며 최근 의원들이 대책 법안을 발의하는 수준으로 진전됐다. 미국의 애리조나주 트렌트 프랭크스 의원 외 24명은 2011년 2월 11일 ‘H.R. 668’ 법안, 일명 방패법(Shield Act)’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EMP위원회의 지적에 따라 주로 전기·통신 기간망 보호를 위해 정부와 민간 전기·통신 업체들이 취해야 할 조치를 명기하고 있다. 프랭크스 의원은 발의 당시 “EMP는 미국의 적국들이 손에 넣을 수 있는 비대칭 전력 중에서 가장 위협적인 무기이며, 전문가들은 EMP탄 하나만으로 전체 미국인들의 70%, 많게는 90%가 영향 받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미국 의회도 초당적 협력을 통해 EMP에 대처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었다. 미 국방부도 2008년 ‘188-125’ 규정을 제정, 대응을 지시했다.
 
러시아 과학자들 북 EMP 개발 도와 EMP 대처 비용과 관련, CRS 리포트는 ‘엄청난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리포트는 “대부분 군 시스템, PC 등 대량 생산된 민간 전자·통신 장비의 경우 당초 디자인을 강화하면 총비용의 2~3%, 군사 전자 장비는 기존 장비 속에 새로 장착할 경우 총 비용의 3~10%가 추가된다”고 했다. 전자기펄스가 전자 장비에 맞지 않도록 밀봉된 금속 상자 속에 넣는 방식이다.

한편 한국 군의 EMP 대응 조치가 없다는 지적과 관련, 첨단 분야에서 근무하는 현역 군 관계자는 “북한의 EMP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폈다. EMP탄을 스커드와 노동미사일로 높은 고도로 발사한 뒤 이를 폭발시키려면 1~2분의 반응시간이 필요한데 그 사이 미사일이 빠른 속력 때문에 한반도 상공을 벗어나게 돼 북한의 남한 EMP 공격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래더스키 박사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했다. EMP를 실은 미사일을 거의 수직으로 발사해 낙하할 때 타이밍을 맞춰 폭발시킬 수 있기 때문에 반응 시간 사이에 한반도 상공을 벗어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또 “10년 전부터 한전에 전기망과 관련한 전자기파 대책을 논의할 것을 제안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며 한국의 EMP에 대한 인식 부족을 꼬집었다. 그러나 한전 관계자는 “정식 협력 요청이 들어왔다는 기록은 없다”고 설명했다.

안성규·전수진 기자·김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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