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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게 구겨진 그린 … 라인 읽는 것보다 상상력 필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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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호 20면

경기도 이천 블랙스톤 골프장의 악명 높은 2단 그린에서 발렌타인 챔피언십대회 출전 선수들이 퍼팅을 하고 있다. [발렌타인 챔피언십 조직위원회 제공]

“저런 그린에서 어떻게 퍼팅을 하지?”
지난 1일 끝난 유러피언 투어 발렌타인 챔피언십이 열렸던 경기도 이천의 블랙스톤 골프장 그린이 화제다. 갤러리로 온 아마추어 골퍼는 “그린 속에 또 다른 그린이 있는 것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발렌타인 대회서 악명 떨친 이천 블랙스톤CC

이 골프장의 평균 그린 면적은 724㎡(약 219평). 그린이 넓은 데다 2단, 3단으로 구겨져 있고 심지어는 한 그린 안에 4개의 그린 조각이 섬처럼 둥둥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블랙스톤 골프장 측에 따르면 코스 디자이너가 한국 골퍼들의 실력이 너무 좋아 그린을 어렵게 조성했다고 한다. 박지선 홍보팀장은 “미국 JMP골프디자인그룹에서 설계를 했다. 그곳의 수석 디자이너 브라이언 코스텔로는 한국 골퍼들은 연습도 많이 하고 상급자 골퍼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코스텔로는 골프의 승부는 퍼팅에서 갈려야 한다고 믿는 설계가다. 그 변별력을 위해 그린 난이도를 높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국 골퍼 실력 좋아 어렵게 만들어”
그래도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코스 설계가 송호(송호골프디자인그룹 대표이사)씨는 “블랙스톤 그린은 최근 그린 설계의 패턴을 반영했다. 골프 장비가 발달하면서 선수 기량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컵 존을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다. 그러나 블랙스톤은 상식에 벗어난 그린도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린에는 3~4개의 컵존이 존재한다. 컵 존은 반지름이 6야드인 원형이다. 대회 때는 라운드별로 네 차례 핀 위치가 바뀌어야 하는데 컵존이 그 역할을 한다. 블랙스톤은 이 컵존이 스코틀랜드의 링크스 코스 그린처럼 자연스럽지 않고 너무 인위적이다.”

송 대표는 “인간의 상상력 속에서 브레이크를 읽어서 스피드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간 지각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면 그것은 코스 설계가의 월권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투어 프로들은 국내 골프장 중에서 아시아나 골프장 동코스 그린을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곳으로 꼽았다. 그린 굴곡(언듈레이션)이 큰 파도처럼 출렁이기 때문이다. 주말 골퍼들은 “다시는 안 온다”는 의미로 ‘다시아나’ 골프장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아시아나 골프장은 그 악명을 블랙스톤에 넘겨도 될 것 같다. 박도규(41) 프로는 “블랙스톤의 그린은 아시아나 동코스보다 더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투어 프로들은 이런 그린에서 어떻게 퍼팅을 할까.

박도규는 “1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1층으로 퍼트하는 위기 상황 자체를 만들지 말라”고 웃기만 했다. 손준업(24) 프로는 “무조건 느낌으로 친다”고 했다. 배상문(25) 프로도 그저 웃었다. 그는 “솔직히 이런 그린에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방법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나름의 노하우가 있지 않겠느냐고 묻자 ‘거리±50’ 이론을 들려줬다.

공은 1단 그린의 A지점에 있고 핀은 오르막 경사가 심한 2단 그린의 B지점에 꽂혀 있다고 하자. A→B까지의 거리를 발걸음으로 재봤더니 10m 정도라면 여기에 50%를 더 계산한다. 10m면 15m 거리의 스트로크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배상문은 “경사면을 평탄하다고 생각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린을 가운데가 불룩하게 솟은 종이라고 생각하자. 이를 팽팽하게 잡아당기면 훨씬 더 길어진다. 이런 식으로 추가 거리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내리막일 경우에는 전체 발걸음에서 50%를 빼야 한다. 그런데 내리막은 오르막처럼 그렇게 간단치는 않다. 일단 오르막은 단순하게 세게 치면 1단에서 2단으로 올릴 수는 있다. 그러나 내리막은 평지와 내리막의 변곡점, 홀 주변 라인 등 여러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동양인 첫 메이저 챔프인 양용은(39·KB국민은행)이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해줬다.
휘어짐이 심한 내리막 퍼트는 둘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는 원래 자신의 퍼트이고, 다른 하나는 중력의 퍼트다. 공이 2단 그린 위의 A지점에 있고 홀컵은 1단 그린의 C지점에 있다. 여기에서 반드시 고려할 것은 중간 변곡점(B지점)까지의 거리다. 이 변곡점부터 공은 중력을 받기 때문이다. A→C까지 전체 거리는 10m이고, A→B까지 평지 거리는 3m, B→C까지 경사진 거리는 7m다. 양용은은 이 같은 내리막 퍼트를 할 때 경사가 심하다고 판단되면 A→B까지의 거리인 3m만큼만 스트로크 한다고 했다. 공이 중력에 의해 자연낙하를 시작하는 변곡점까지만 보낸다는 얘기다. 그는 “대부분의 아마추어 골퍼는 휘어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내리막 퍼팅이 어려운 것은 중력이 미치는 지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양용은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였다. 홀을 기준으로 20㎝ 정도 좌우 라인을 봐야 한다면 오르막 퍼트일 때는 10㎝를 적게 보고, 내리막일 때는 15㎝ 정도 더 많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르막에서는 공을 강하게 치기 때문에 라인이 적게 먹고, 내리막은 중력에 의해 더 빨리 휘어지기 때문이다.
 
“오르막 땐 상체 세우고 밀어쳐야”
김종덕(50·혼마골프) 프로는 2, 3단 그린의 오르막 퍼트와 관련해 더 세심한 팁을 줬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오르막 퍼트 때문에 타수를 더 많이 잃는다고 했다. 항상 처음 친 퍼트가 짧아 공이 제자리로 굴러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얼마 전 블랙스톤에서 아마추어 고수들과 라운드를 했다. 어느 골프장을 가도 70대를 치는 분들이었는데 100개 가까이 치더라. 한두 차례 실수하자 당황한 나머지 무조건 힘으로 퍼팅을 하는 게 문제였다.”

김 프로는 “블랙스톤처럼 굴곡이 심한 오르막 그린에서는 당구처럼 공을 ‘오시’로 밀어쳐야 한다”고 말했다. 밀어치지 않으면 강한 스트로크를 해도 공이 벽에 걸리듯 멈춰서고 만다고 했다. 그는 “오르막 퍼팅의 셋업 때는 몸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체를 세우면 공과 홀까지의 거리감이 좋아지고 볼에 직진의 톱 스핀(오시)이 잘 걸리기 때문에 롱 퍼팅 때도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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