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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개월 시차로 주식시장 따라가” 국내 미술 시장도 더디지만 반등 조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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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호 22면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술시장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시장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피카소의 1932년 작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Nude, Green Leaves and Bust)’이 1억640만 달러에 팔렸다. 경매 사상 최고가다. 2월 런던 소더비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걷는 사람Ⅰ(L’homme qui marche I)’이 세운 기록을 석 달 만에 갈아치운 것이었다.

되살아난 세계 미술시장

프랑스의 미술시장 정보업체인 ‘아트 프라이스(artprice)’의 2010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낙찰 총액은 93억6000만 달러(약 10조1000억원)에 달했다. 2009년의 두 배에 이르는 성장이었고, 미술 시장의 활황기였던 2007년(낙찰 총액 93억9000만 달러) 수준에 거의 근접했다.

“각국의 미술시장은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가게 된다”는 김순응 아트컴퍼니 대표의 말대로 세계 미술시장의 회복은 우리 미술시장에도 긍정적 신호다. 이미 중국은 바닥을 친 뒤 ‘V자’ 형태로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지난해 세계 미술 경매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미국·영국도 활황기 수준을 거의 따라잡았다. 우리는 아직 회복세가 더디다. 김 대표는 “다른 나라의 시장은 대부분 상승세인데, 우리는 그대로라는 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싼 가격만큼 매력적인 구매 조건은 없다”고 말했다.

미술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 미술계 유력인사들이 지난해 인천공항에 얼마나 많이 오르내렸는지를 보면 (시장 전망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전 세계 500대 작가 안에 193명이나 포함시킨 중국에서 불과 몇 년 전에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또 다른 외부 요인은 금융시장이다. 선진국들이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양적 완화 정책을 쓰면서 돈이 많이 풀렸다. 이 돈이 더 나은 수익률을 찾아 미술품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 금융자본이 미술시장에 유입되면서 금융시장과 미술시장은 동조화 경향을 띠고 있다. 미술품 가격지수인 ‘메이-모제스 아트 인덱스(Mei-Moses Art Index)’를 만든 전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모제스 교수는 “미술시장은 주식시장을 6개월에서 18개월의 시차를 두고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박혜경 에이트 아트인스티튜트 대표는 “코스피지수가 2000포인트 선에 안착한 것은 미술시장에도 긍정적 신호”라며 “좋은 작품을 고르는 눈이 있다면 미술시장이 반등하는 지금이 살 때”라고 말했다. 부동산 등 다른 투자수단이 여전히 기를 못 펴는 상황에서 그림은 매력적인 대안 투자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의 회복 흐름은 수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최정표 한국 아트밸류 연구소장(건국대 경제학과 교수)이 만든 그림가격지수 KAPIX(Korea Art Price Index)에 따르면 2008·2009년 그림 가격은 거의 60%가 떨어졌다. 그런데 지난해엔 9% 상승해 반전의 징후가 나타났다. 최 교수는 “그림 값이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 상태”라며 “당분간 이런 추세가 지속될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에는 경매도 활기를 찾고 있다. 양대 옥션인 서울옥션과 K옥션의 3월 경매 낙찰률은 각각 74.4%와 75.2%. 1년 전에 비해 5%포인트 정도 증가했다. 온라인 경매는 더 활발하다. 서울옥션 인터넷 경매는 서버를 풀가동해야 할 만큼 인기였고, K옥션은 4월 낙찰률 82.5%, 낙찰금액 4억4000만원으로 2006년 온라인 경매를 시작한 이래 최고기록을 세웠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2008·2009년의 침체기에서 벗어난 건 확실하다. 아트페어나 전시의 그림들이 화려해진 걸 봐도 그렇다”고 말했다.

박혜경 대표는 “같은 작가의 작품을 여럿 갖고 있다면 이번 기회에 컬렉션을 다양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개인의 취향과 미술품의 트렌드가 세월 따라 달라져서 컬렉션을 바꾸고 싶다면 요즘처럼 시장 흐름이 좋을 때가 소장품을 정리하고, 새로운 작품을 사기에 좋은 타이밍이란 얘기다.
그렇다고 미술시장이 무턱대고 뛰어들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시간을 두고 좋은 작품을 볼 줄 아는 안목도 키워야 하지만, 그림을 거래할 때 소요되는 비용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경매 수수료 등 거래비용은 물론 보험료, 운송료 등 상품 가격의 5~10%는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주식·부동산 등 어떤 투자보다도 비싼 비용이다. 그래서 웬만큼 올라서는 그림 투자로 남기기 어렵고, 2007년 같은 활황이 아니고서야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도 없다.

또 한 가지는 그림은 사는 것만큼 파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김순응 대표는 “세상엔 그림처럼 사기는 쉽지만 팔기는 어려운 것이 없다”며 “팔고 싶을 때 팔리지 않는 그림은 버릴 수도 없는 커다란 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림 초보들은 ‘40대 이상,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힌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는 게 좋다. 팔 때를 고려하면 시장에서 거래되는 작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품은 ‘영혼이 있는 황금(spritual gold)’이라고도 불린다. 잘만 하면 수익을 낼 수 있는 ‘황금’이지만 그냥 황금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림을 구매한 자금이 작가에게 돌아가고, 다시 훌륭한 작품이 쏟아지면서 투자자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는 ‘윈-윈’ 시장이 만들어질 때 컬렉션의 즐거움에 투자 수익까지 따라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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