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많이 탄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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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이다. ‘계절의 여왕’ ‘청춘의 계절’ ‘가정의 달’ 등 다양한 수식어에 걸맞은 화려한 꽃과 초록빛 새싹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적당히 따뜻한 날씨는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 활기를 불어넣어 바깥 활동이 많아지게 한다. 하지만 밥맛을 잃어 얼굴이 까칠해진 아이, 주말 내내 소파에 누워 지내고도 다음날 출근하기 힘겨워하는 남편을 보는 주부의 마음은 마냥 봄날이 아니다. 이러한 증상이 봄에 나타나면 ‘봄을 탄다’ 혹은 ‘춘곤증’이라 하고 여름철에는 ‘여름 탄다’ ‘주하병(注夏病)’이라 한다. 계절의 변화에 신체가 적응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한의학에서는 인체를 자연과 마찬가지의 변화를 겪는 ‘소우주’로 본다. 봄에는 새싹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왕성하게 잎을 피워 영양을 생산해낸다. 가을에는 수확을 하고 겨울에는 새로운 생명활동을 위해 영양을 뿌리 깊숙한 곳에 저장한다. 다시 봄이 오면 저장해둔 기운을 밖으로 내보내 새싹을 틔운다. 이렇게 생명활동이 반복된다.

 사람도 겨울 동안 저장했던 기운을 봄에 밖으로 내보내 새로운 생명활동을 시작한다. 여름에는 왕성한 활동을 위해 기(氣)를 많이 사용한다. 이렇게 계절 변화에 따른 요구에 맞춰 기를 공급하다 보면 기가 부족하거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한 사람은 기의 분포에 편차가 생긴다. 이는 신체 기능의 불균형을 일으켜 몸에 이상 증상을 보이게 된다. 신체 기능을 유지해가는 에너지인 기, 그리고 기의 활동력이 충분한가 그렇지 못한가에 따라 건강이 좌우되는 것이다. 따라서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냉이·달래와 같은 봄나물이나 삼계탕·영양탕 같은 보양식으로 기운를 보충하는 것도 좋을 수 있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평소에 기를 잘 간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봄·여름의 생명활동을 통해 기를 충분히 생산하고 가을에 잘 거둬들이며 겨울에는 잘 간수해 새봄의 생명활동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기를 충분히 생산하고 간수하기 위해서는 음식 섭취와 생활의 절제가 중요하다. 음식물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 못잖게 어떻게 먹을지도 중요하다. 음식을 규칙적으로 골고루 천천히 잘 씹어 먹으면 영양분이 잘 흡수돼 기 생산의 원료를 확보할 수 있다. 소화기관 기능이 활발해야 기를 많이 생산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일상생활에서는 과로를 피하고 피치 못할 경우에는 나중에 휴식을 취해 소모된 기를 회복해줘야 한다. 겨울철에는 몸에 저장된 기가 너무 소모되지 않도록 격렬한 운동을 피한다. 기가 충분하더라도 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적절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 기 순환이 잘 된다.

 한의학에서는 춘곤증이나 주하병을 계절 변화에 따른 일시적인 이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사계절에 걸친 일상생활의 부조화에 의한 질환으로 이해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춘곤증이나 주하병은 기가 부족한 사람에게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므로 기가 부족하거나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 이를 개선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활기찬 봄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일 뿐 아니라 여름·가을·겨울에 일상생활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건강비법이다.

<조한진 한의학 박사(좋은아침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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