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보호막 생기면 중소기업 다 살아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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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대기업이 두부까지 만드는 건 심하지 않으냐.”

 동반성장위원회가 지난달 29일 가이드라인을 확정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도입을 찬성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대기업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중소기업 밥그릇까지 빼앗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얘기다. 가이드라인이 나오자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제동을 걸었다”며 반겼다. 반면 대기업 관계자는 “아직 업종을 확정하지 않았으니 좀 더 지켜보자”며 내심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1997년 시행됐다가 2006년 폐지한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와 판박이다. 경제환경이 변해 ▶대·중소기업 구분이 어려워졌고 ▶중소기업이 가격 경쟁에만 몰두해 품질이 떨어졌으며 ▶외국 기업이 국내에 진출해 시장을 잠식하는 등 제도의 의미가 퇴색했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이 제도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양극화가 심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대기업의 영업이익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중소기업의 수익성은 지속적으로 악화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기업이 ‘돈이 된다’ 싶으면 손을 뻗치는 통에 중소기업들은 도무지 살아남을 수 없다”며 “적합업종 제도는 중소기업을 위한 마지막 보호막”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호막은 ‘양날의 칼’이다.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키울 수도 있지만 경쟁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실제로 과거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선정됐던 부문의 기업에선 기술 개발을 소홀히 해 소비자 만족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나타나기도 했다. 보호막 아래 경쟁을 포기해 버린 탓이다.

오히려 보호막을 깨고 성공한 중소기업들이 있다. 위니아만도는 김치냉장고를, 한경희생활과학은 스팀청소기를 개발해 시장을 휘어잡았다. 틈새시장을 기술력 하나로 개척했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제2의 위니아만도와 한경희생활과학이 등장할 수 있도록 정부가 중소기업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고 인재 육성을 지원함으로써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을 상대로 한 보호막보다 자생력이 먼저다. 두부 만드는 데 대기업이 끼어든 것으로만 볼 게 아니다. 두부를 잘 만들어 큰 기업이 돼야 한다.

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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