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선거개입에 대한 선관위의 고민

중앙일보

입력

시민단체의 선거개입에 대해 선관위가 17일 '제한적 허용'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여론을 감안한 고육책이다. 정치권의 선거법 합의를 둘러싼 '담합 비난' 등 정치불신이 극심해진 최근 상황도 배경이 된 듯하다.

이날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을 금한 선거법 87조의 폐지를 지시한 것도 시민단체쪽의 손을 들어주는 기폭제가 됐다는 분석. 외국출장으로 불참한 손봉숙 (孫鳳淑)
.정성진 (鄭城鎭)
위원을 뺀 7명의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전체회의에서 "법을 지키는 테두리내에서 가급적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시민단체들의 영역을 넓혀주자" 는 의견이 주류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에 배석한 임좌순 (任左淳)
사무차장은 "자칫 사이비 시민단체의 난립과, 금권을 이용한 후보들의 시민단체 매수 등의 부작용이 생겨날수 있지만 '더이상 정치권에만 맡길수 없다' 는 유권자의 요구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 라고 말했다.

선관위가 막판까지 고심했던 것은 어느 선까지를 선거운동으로 보고, 어떤 활동을 단순한 의견개진으로 볼 것이냐 하는 대목. 위원들은 "특정후보의 당선.낙선 목적임을 명시한 상태에서 명단등을 언론을 통해 공표하는 행위는 규제해야 한다" 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특정단체가 자신들의 설립취지와 이익에 반하는 입법.공약을 내놓은 후보에 대해 단순히 '000에 반대한 의원' 이란 식으로 명단을 내놓는 것은 유권자에 대한 정보제공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선관위는 회의에 앞서 외국사례와 법조.학계.정치권.시민단체등의 의견을 모아 6개의 안 (案)
을 마련했다. 그만큼 여론과 실정법 사이에서 고심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선관위 내부에선 여전히 "돈과 조직에 의존하던 공급자 위주의 선거가 수요자 중심의 선거로 변화하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 이란 긍정론과 "시민단체 난립으로 인한 혼탁.저질선거가 우려된다" 는 부정적 견해가 엇갈린다.

특히 선거법 87조가 폐지될 경우, 시민단체들의 전격적인 선거개입을 어떻게 관리·감독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소리도 높다.

이정민 기자 <jm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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