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날 공기 팝니다" 흥겨운 축제 현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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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호 16면

트래펄가 광장 시민 축하 공연. 박정경 런던 통신원

영국은 분명 왕국이다! 런던에서 로열 웨딩을 보며 느낀 점이다. 지난달 29일 영국은 온통 잔치 분위기였다. 유니언 잭이 물결을 이룬 런던 곳곳에서 길거리 파티가 열리고 술집에서는 삼삼오오 TV 중계를 보는 인파가 윌리엄 윈저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앞날을 축복했다. 영국 국기 유니언 잭의 빨강·파랑·하얀색 옷을 입은 자매, 국기로 온몸을 장식한 할머니들,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 등 웨스트민스터사원 주변은 인산인해였다.

윌리엄-케이트 '로열 웨딩' 현장 런던은

가족과 나온 빅토리아 스자보는 “내 생애 매우 뜻 깊은 날”이라며 “동화처럼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잘살았다’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관광차 왔다는 에린 셰익스피어는 “결혼식이 현대화된 점이 맘에 든다”며 “미국에서도 큰 관심거리”라고 했다. 초등학생들도 연휴 전날 학교에서 기념 파티를 벌였다. 여섯 살 우리 아이도 “맨 앞줄에 앉은 하객은 결혼식 도중에 화장실을 갈 수 없다고 선생님이 그랬어”라며 별별 얘기를 듣고 왔다.

결혼식이 끝난 뒤 시민들은 정부 건물이 밀집한 화이트홀 거리를 따라 트래펄가 광장으로 모여 그들만의 피로연을 열었다. 누군가의 가벼운 농에도 환호를 질렀다. 무대가 펼쳐진 곳에선 한 남자가 즉석 프러포즈를 하는가 하면 커밀라 가면을 쓴 여성이 왕세자비의 흉내를 내 좌중을 웃기는 곳도 있었다.

인근의 뱅쿼팅 하우스(17세기 지어진 화이트홀 궁전의 일부)에선 상류층 사람들이 한껏 멋을 부리며 와인 파티를 열었다. 뱅쿼팅 하우스는 크롬웰의 시민혁명으로 당시 절대군주를 자처했던 찰스 1세가 처형된 곳이다. 잠시나마 영국 군주제가 무너졌던 역사 현장에서 군주제의 희망과도 같은 세기의 결혼식을 지켜보는 셈이다.이보다 더 민족주의적인 이벤트가 또 있을까. 영국인들이 그렇게 열광하는 축구도 잉글랜드 따로 스코틀랜드 따로다. 그런데 결혼에는 하나가 됐다.

그렇다고 영국민이 ‘신데렐라’ 탄생을 마냥 부러워하거나 신비감에 들뜬 건 아니다. 경기 침체와 하루가 멀다 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들려오는 전사 소식으로 우울한 때. 모처럼 경사를 맞아 한바탕 즐겨 보자는 마음인 것 같다. 후끈 달아오른 결혼식 마케팅은 한 단면이다. 윌리엄·케이트 커플의 초상, 왕실 문양으로 장식한 찻잔이나 문구, 침구류들이 대부분이지만 별난 상품도 잇따라 출시됐다.

왕실에서 유감을 표시한 럭셔리 콘돔 기념품과 결혼식 당일 공기를 담아 판다고 나선 현대판 봉이 김선달도 등장했다. 이번 행사가 매스꺼운 사람들을 위한 토사물 봉투는 매진돼 다시 제작에 들어갔다. 봉투를 디자인한 리디아 레이스는 일간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왕정 반대는 아니지만 결혼에 너무 열광하는 데 약간의 반감을 표시했을 뿐”이라고 했다. 기념품 시장이 약 460억원으로 집계되는 가운데 왕실 측은 일회성 소모품은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약혼 발표 때 입은 드레스가 동나 화제가 됐던 하비니콜스 백화점은 윌리엄과 케이트를 닮은 가짜 커플을 섭외해 사인회와 사진 찍기 서비스를 펼쳤다. 지나가다 봤는데 너무 닮았다.이런 축제에 힘입어 왕가에 대한 국민 인식이 나아지고 있다. 왕정 폐지론이 다이애나 죽음 직후와 찰스 왕세자 재혼 무렵 치솟다가 최근 조사에서 다소 누그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월간지 ‘프로스펙트’ 4월호가 조사 전문 기관 유고브에 의뢰해 2278명에게 물었더니 ‘찰스와 윌리엄 누구도 원치 않는다’는 군주제 폐지 의견이 13%로, 찰스와 커밀라의 약혼 발표 직후인 5년 전 19%보다 완화됐다.

케이트에 대한 인식도 나아졌다. ‘장차 훌륭한 왕비가 될 것’이라는 응답이 63%로 나왔다. 낮에는 쇼핑, 밤에는 나이트클럽으로 출몰하는 ‘첼시걸’의 이미지를 벗어난 것이다. ‘결혼식 자체엔 별 관심이 없다’는 30대 케빈은 “케이트는 왕실의 오만한 다른 가족에 비해 잘난 체하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일부 노인 세대는 다이애나비 묘소를 찾은 그녀를 보고 ‘환생한 다이애나’를 보듯 눈물을 흘렸다.

케이트는 결혼 일주일 전까지 번화가인 슬로안 스퀘어에 경호원 2명만 대동하고 와 위슬스 등 중저가 의류를 구입했는데 이 모습이 많은 신문의 1면을 장식하며 대중적 친근감을 일으켰다. 영국 패션계는 대환영이다. 위슬스의 숍매니저인 에밀리 스미스는 “크림빛 블라우스와 물방울 무늬 검은 바지를 사 갔다”며 필자에게 보여줬다. 케이트가 1년간 근무했었던 패션 브랜드 직소의 한 지점장도 “본사에서 액세서리 구매 보조로 일했는데 재능이 많았다고 들었다”며 “굉장히 자랑스럽다”고 흥분했다.

이번 혼인은 노숙자와 밤을 보내며 ‘낮은 데로 임한’ 왕자와 벤처 사업으로 노동 계급에서 부르주아로 상승한 가계 출신 여성의 결합이다. 윌리엄 왕자가 받은 ‘케임브리지 공작’이란 작위를 마지막으로 갖고 있던 이는 조지 3세의 손자인 조지 왕자다. “사랑 없는 정략결혼은 싫다”며 1847년 평민과 결혼했던 사람이다. 로맨티스트였던 전 케임브리지 공작을 따라 평민 여성을 선택한 윌리엄 왕자. 사랑 없는 결혼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까. 그에게 지금 세계의 시선이 쏠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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