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GDP 올라간다고 가난이 사라지는 건 아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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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GDP는 틀렸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외 지음
박형준 옮김, 동녘
225쪽, 1만3000원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008년 “교통 사고가 많이 나서 늘어나는 복구와 의료에 드는 비용도 경제 성장에 포함된다”며 “이런 식이라면 사회 발전의 개념은 도대체 뭔가”라고 반문한다. 당장 세계적인 석학을 모아 ‘경제 실적과 사회 진보의 계측을 위한 위원회’를 꾸렸다.

 이 책은 위원회가 18개월 동안 논의한 내용을 정리한 일종의 보고서다. 경제 성장이 거듭되면 가난한 나라의 국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GDP의 신화’에 칼을 들이댄다. 예컨대 개발도상국이 자원 채굴권을 외국에 팔아 GDP를 끌어올린다 해도 이윤이 밖으로 빠져나가면 결국 자원 고갈과 환경 오염으로 국민의 부는 감소한다.

 1930년대 만들어진 GDP가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로 쓰이지만 국민의 복지를 증진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잊고 성장에만 매몰되 있다는 비판이다. 결국 높은 GDP 성장률에 초점을 맞추는 미국식 모델에 대한 유럽의 반론인 셈이다. 이런 유럽적인 시각은 책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100의 소득을 올리는 개인이 10을 민간 의료보험에 지출하는 것과 10을 세금으로 내고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지만 기존 측정 방식으로는 후자의 가처분소득이 10만큼 줄어든 것으로 측정된다(98쪽)’, ‘가사 노동을 비롯한 가계 생산 규모는 미국이 GDP의 30% 수준이지만 핀란드는 40%, 프랑스는 35%에 달한다. 여가 시간도 독일은 하루 400분에 가까운 반면 미국은 350분에도 미치지 못한다(106~110쪽)’는 등의 구절이다. 요컨대 세금을 많이 걷는 대신 사회 복지를 강화한 유럽 모델은 현재 GDP 측정 기준으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압축성장과 세계화, 그에 따른 양극화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의 현재 상황에서 이 책은 문제의 근원을 되짚어 보는 계기로 삼기에 더할나위 없이 훌륭하다. 다만 “GDP는 틀렸다”고 단언해 놓고도 “이것이 정답”이라고 내세울 만한 결과물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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