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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율 98.8%” … 담뱃값 올린 BAT ‘궁색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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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잎담배 경작 농민들이 26일 대전에서 ‘BAT코리아의 담배가격 인상 규탄을 위한 집회’를 열고 외국담배 모형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엽연초생산협동조합중앙회 제공]


28일부터 던힐과 켄트 등 브리티시어메리칸토바코(BAT) 코리아가 생산하는 담배 가격이 200원씩 오른다. 다음 달에는 마일드세븐 등 JTI가 생산하는 12개 브랜드가 인상에 합류한다.

 BAT는 지난 22일 가격 인상을 발표하며 “최근 몇 년간 수익성이 급속히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해 매출원가율(매출액 대비 원가의 비율)이 98.8%이며 1100억원의 영업손실이 났다고 공개했다. BAT가 지난해와 같은 판매량(7억9800만 갑)을 유지하면 이번 인상으로 수입(매출)이 1596억원 늘어나 적자가 해소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BAT의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경쟁회사들과 비교할 때 원가 부담이 터무니없이 크기 때문이다. 매출원가율은 국내 기업인 KT&G가 40.1%, 말보로 등을 생산하는 필립모리스가 3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외국계 담배회사들은 국내 잎담배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전량 외국에서 원료를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실제 국산 잎담배의 가격은 ㎏당 6.72~7.26달러인 반면 미국산은 3.75~3.97달러, 중국산은 1.07~1.85달러, 인도산은 0.99~2.35달러 수준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BAT가 9년 전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까지 도마에 다시 오르고 있다. BAT는 2002년 외국계 담배회사로는 처음으로 국내에 담배 제조공장을 짓고 직접 생산을 시작했다. 당시 존 테일러 초대 사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담배의 원료인 잎담배는 물론 각종 원·부자재를 최대한 한국에서 조달하고 현지 고용인원도 크게 늘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9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BAT 측은 “국내에서 생산된 잎담배를 KT&G가 싹쓸이해 가기 때문에 사고 싶어도 살 방법이 없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KT&G 측은 “원하면 얼마든지 계약재배를 통해 원료를 확보할 수 있다”며 “외국회사들이 사주지 않기 때문에 농가 보호 차원에서 전량 수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담배 농가들 역시 가격 인상에 비판적이다. 국내 담배농가들의 단체인 엽연초생산협동조합중앙회는 26일 대전에서 규탄집회를 열고 가격 인상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정부로부터 규제를 받는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논란도 불거진다. 법상 담배 가격은 신고제이기 때문에 가격 인상은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 평가는 시장에서 받아야 한다. 그러나 물가를 의식한 정부는 담배가격 인상을 허용하지 않아왔다. 정부 규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외국 회사들은 이번 기회에 법적 권한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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