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균형 잡힌 새 역사교과서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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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
뉴데일리이승만연구소 공동대표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년부터 실시키로 한 고등학교에서의 한국사 필수 방침은 금년 초부터 중앙일보가 벌인 캠페인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를 계기로 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위원장 이배용)·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태진)를 비롯해 집필 교수와 교사들이 보다 균형 잡힌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와 과거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편향’과 ‘왜곡’이라고 비판을 받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그것들이 ‘민족주의 사관’과 ‘민중주의 사관’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중요했던 민족주의 이념은 지금 한반도에서 한국어를 쓰며 사는 7000만 한국인의 실존을 설명하는 도구로서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그 한국인을 가리켜 남쪽의 대한민국은 ‘한민족’으로 부르고 있는 데 대해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태양민족’, ‘김일성민족’으로 다르게 부름으로써 통일은 말할 것도 없고 사소한 소통도 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한 현실에서 이해의 도구는 민족이 아닌 국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두 국가의 역사를 같은 단원 속에 묶어 서술해 오던 관행은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는 따로 떼어 부록이나 별도의 단원으로 다루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편찬될 한국사 교과서의 토대는 대한민국의 국민주의와 국가주의를 표현하는 ‘국민주의 사관’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근·현대사의 중심 되는 내용은 1948년에 대한민국의 건국을 기점으로 하여 나라를 세우고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건국세력’과 ‘호국세력’, 그리고 그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헌신했던 ‘건설세력’ 또는 ‘근대화세력’에 관한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특히 그 세력들의 형성 뿌리는 주로 식민지 시대의 교육과 경험에 있기 때문에 당시 국내에 살았던 엘리트의 삶도 해외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중요하게 서술되어야 한다.

 또한 새 교과서는 ‘민중주의 사관’의 테두리로부터도 벗어나는 것이어야 한다. 국민 안에는 민중도 있고 엘리트도 있으므로, 그들을 모두 포함해야만 ‘균형 잡힌’ 서술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우선 한말 동학의 역사가 많은 페이지에 걸쳐 서술되는 데 반해, 엘리트인 개화파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에서 적은 분량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관행을 없애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국민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계 보편적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에 토대를 둔 ‘자유주의 사관’의 수용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민족, 민중, 통일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던 ‘민족주의 사관’과 ‘민중주의 사관’은 그 주장이 추상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내부의 문제점들을 들추어 낸다는 기능을 수행해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보다 현실주의적인 ‘국민주의 사관’과 ‘자유주의 사관’에 주류의 자리를 내주고 그 역할에 맞는 적절한 위치를 찾을 때가 되었다. 그러한 변신은 신념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있었던 대로’ 서술한다는 역사학자의 본래 임무에 충실하려는 학자적 자세의 재확인에서 오는 것일 것이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과정에 이념적 편향의 논란 대상이 되고 있는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많이 참여했다는 언론 보도를 보게 된다. 이 문제도 학자적·학문적인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교과서 집필에는 무엇보다도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집필진은 대학교수들과 연구기관 전문가들로 구성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교육 현장의 경험이 필요하므로 그 경우에 교사들을 자문, 검토, 검정위원으로 참여시켜야 할 것이다.

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 뉴데일리이승만연구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