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외국기업 없는 자유무역도시 만들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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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인천 경제자유구역에 투자하려던 마이크로소프트.휼렛 패커드.KT 등 국내외 6개 정보기술(IT)기업 컨소시엄이 해체된 것은 실망스런 일이다. 인천 경제자유구역청과 땅값 문제로 옥신각신하다 계약이 무산된 것이다. 자칫 송도가 외국기업 없는 국제도시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번 투자 무산은 두 가지 이유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는 당국의 우물안 개구리식 발상이고, 또 하나는 고객의 수요를 읽지 못하는 비(非)시장적 태도다. 물론 외국기업들에 헐값으로 땅을 매각해선 안 된다. 그러나 송도신도시의 진짜 경쟁 상대는 협상 당사자인 IT컨소시엄이 아니라 상하이(上海).싱가포르.홍콩 등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외국기업을 유치한 뒤 더 큰 파급효과를 도모해야지 땅만 비싸게 팔려다간 판판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외국기업들은 정부의 규제 완화 의지를 아쉬워하고 있다. 투자가 무산된 기업들은 "IT나 금융 같은 고부가가치산업은 규제 완화가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제조 공장 유치에나 먹혀들 세금 감면 혜택만 고집했다. 땅값보다 자유로운 비즈니스 환경을 원하는 외국기업의 수요를 못 읽은 것이다.

송도신도시는 이미 상하이 푸둥(浦東)지구에 덜미를 잡힌 상태다. 국제병원단지 건립 구상도 송도에서 먼저 나왔지만 중국이 더 큰 규모로 이미 착공한 상태다. 우리가 규제로 손발을 묶는 사이에 중국이 먼저 치고 나온 셈이다. 이러니 "구상은 한국이 하고, 실행은 중국이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인천 경제자유구역청은 개별 기업들과 투자 협상은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까지 투자된 해외자본은 포스코건설과 손잡은 미국 부동산회사인 게일과 독일 물류회사인 셴커뿐이다. 지식.정보산업의 메카를 지향하는 송도신도시 구상은 출발 단계에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정부의 동북아 허브 구상도 헛소리일 수밖에 없다. 친 시장정책과 규제 완화를 목말라 하는 외국기업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