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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로 친근히 다가온 정지용 시에 빠져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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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국인은 누구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며 경제강국 못지않게 문화강국이라는 긍지를 갖고 있다. 5월 초 산업정책연구원(IPS)이 발표한 국가지수를 살펴보니,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세계 22위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1만2030달러로 세계 49위, 전체 경제 규모는 11위라고 발표되었다. 문화지수는 발표된 적이 없지만 한국인들은 아마도 프랑스 등과 함께 세계 1~2위권이라 생각하고 문화강국이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자긍심이 문화 창조력에 근거한 '한류' 열풍을 몰고 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면 과연 한국은 문화강국인가? 문화는 인지적 경험문화, 심미적 문화, 규범문화를 포괄하는 총체적 범주를 의미한다.

또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지켜나가려는 의지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려는 집념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러한 기초개념에 근거할 때 한국은 문화강국이라고 하기에 부끄러운 측면이 많다. 이를테면 새 도로를 내고 새 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해 유명 작가의 집을 헐어버리고 문화재를 원래 자리에서 마구 옮겨버리거나 훼손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의지마저 박약하다는 비난을 많이 들었다. 이는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는 과정상의 오류였음이 분명하다. 또 문화 콘텐트 창조에도 큰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현실임에 틀림없다.

다행스럽게도 민주화 이후 지방자치제도 정착과정에서 지역문화를 지키고 활성화를 도모하는 열기가 솟아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남원의 춘향제, 통영의 윤이상 국제음악제, 장성의 홍길동제, 밀양의 대중음악제, 여주.이천.광주의 도자기축제 등이 최근의 문화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또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축제로는 만해 한용운 문학축전, 김유정 문학제, 이효석 문학제 등이 있다. 그 중에서 1989년 시작되어 올해로 17회를 맞는 옥천의 정지용 문학축제가 가장 오래되었다. 항상 5월 둘째 주에 열리는 지용제는 13일부터 15일까지 옥천에서 열린다. 지용문학포럼, 지용백일장, 17회 지용문학상 시상, 생가 방문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특히 올해의 하이라이트는 '정지용 문학관' 개관이라 할 수 있다.

시인 정지용이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은 매우 많다. 그는 모더니즘의 기수로서 '감각적 서정시'라는 창조적인 시 세계를 펼쳤으며, 잡지 '문장'을 통해 조지훈.박목월.박두진 등 청록파 시인을 추천하여 문단에 젊은 피를 수혈하였고, '향수'라는 대중가요에서도 알 수 있듯 문학의 대중화에도 기여하였다. 특히 좌우익 갈등 등 시대적 한계에 부대끼면서도 정치성에 휘둘리지 않고 시적 순수성을 올곧게 유지하려고 한 노력은 본받을 만하다. 영상매체에 의해 인쇄매체가 위기에 처한 오늘날 지용이 다시금 그리워지는 것은 필자만의 소회가 아닐 것이다.

박태상 방송대 교수.지용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