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스페셜 - 화요교육] ‘수학 고난도반’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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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서초구 양재고에서 3학년 학생들이 김영완 교사의 수학 방과후 수업을 듣고 있다. [김태성 기자]


어렵게 출제된 2011학년도 수능시험에서 수리 가(이과생이 보는 수학) 영역 만점자는 35명. 전년도 만점자(463명)의 1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 영역에 가중치를 두는 대학(서울대는 1.25)이 많아 수리 가에서 만점은 합격 보증수표로 여겨졌다. 이런 수리 가 만점자 35명 가운데 서울 서초구의 양재고가 두 명을 배출했다. 전국에서 재학생 만점자가 두 명 이상 나온 학교는 양재고가 유일하다.

이 학교에서 만점자가 나온 비결은 무엇일까. 지난해 만점을 받은 정지원(19·한양대 의대)씨는 “수능이 쉽게 나온다고 해서 방심할 뻔했지만 고난도 문제를 소개해 준 선생님 덕분에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양재고 수리 가 만점자 정지원(왼쪽)·이영식씨.

만점자가 비결로 손꼽은 선생님은 지난 22일 오후 방과후 학교 수업인 ‘수리 가형 고난도 반’을 맡고 있었다. 김영완(60) 교사다. 그는 강남 학원가나 EBS 인터넷 강의에서 볼 수 있는 젊은 교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경력 35년차 교사였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아 요식행위가 필요한 전문직이나 수석교사직에는 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종근 양재고 교장은 “매일 오전 6시30분에 출근해 학생 지도하고 교재 연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며 “연세 드신 분들은 담임교사를 하지 않으려 하는데 김 선생님은 지난해 3학년에 이어 올해 2학년 반을 맡았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이날 2009년도 연세대·고려대 수시전형 논술 기출 문제를 변형해 학생들에게 풀도록 했다. 그의 책상에는 일본에서 발행된 수학 서적 번역본과 기출 문제를 정리한 자료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김 교사는 “수능에서 고난도 4점짜리 킬러(killer·핵심) 문제를 잡기 위해서는 난도가 높고 창의력을 요구하는 대학 논·구술 기출문제나 본고사 문제를 풀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규 수업시간 50분 중 30분은 기본 개념을 익힐 수 있는 문제를 풀게 한 후 나머지 20분은 고난도 문제를 제시했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고난도 문제 풀이 방법을 토론하고 부족한 부분은 방과후 학교 수업으로 해결한다. 고3 장우성(18)군은 “일반 시중 문제집에서는 찾을 수 없는 깊이 있는 문제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고난도 문제를 학생들에게 주기 위해 문제당 30분 이상 투자했다”고 말했다.

 김 교사 수업의 특징은 토론식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날 방과후 수업에서 김 교사는 학생들에게 도함수를 제시하고, 원래 함수를 구하는 문제를 냈다. 답을 먼저 구한 이강일(18)군이 칠판에 나와 그래픽을 이용해 문제를 풀었다. 이때 김 교사가 학생들에게 “정상적인 풀이 방법이 아닌데 이 대목에서 질문을 해보라”고 유도하자 학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김 교사는 “창의력이 풍부한 학생들에게 토론 기법을 적용하면 풀이 방법이 더욱 다양해진다”고 말했다.

 김 교사의 이 같은 노력으로 지난해 그의 방과후 학교 수업을 들은 상위권 학생 15명 중 8명이 서울대에 합격했다. 지난해 수능에서 이 학교 출신의 또 다른 만점자 이영식(19·서울대 의대)씨는 “다양한 풀이 방법 말고도 실수를 하지 않는 훈련이 고3 수험기간에 필요하다”며 “수학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많지만 만점자가 35명에 불과한 것은 훈련 역시 중요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수능과 같은 실전 훈련을 시키는 것은 사교육의 강점 중 하나다. “지난해 수리 가 만점자 35명 중 8명을 배출했다”는 서울 강남 대치동의 Y학원. 이 학원 역시 지난 2월부터 학생들에게 고난도 문제를 매주 실전처럼 푸는 훈련을 시킨다. 이 학원 Y원장은 “수능 기출 유형은 사교육이나 문제집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며 “수능 출제기관은 같은 유형을 다시 내지 않으니 변형된 유형을 연습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2008학년도 고려대 정시모집의 자연계 논술 문제와 함께 이를 변형한 유형을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문제 풀이를 시키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수리 영역 공·사교육 전문가들은 “고난도 문제를 반복 훈련하기 위해서는 대학 홈페이지에 공개된 수시 논술 문제를 참고하거나 주위 교사의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오종운 이투스청솔 평가이사는 “수리 가 영역은 수능 난이도를 맞추기가 가장 어려운 과목”이라며 “만점자 1%를 내겠다는 정부 방침이 있지만 어렵게 나올 1~2문제는 항상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김민상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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