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눈동자 색깔에 담긴 감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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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세상을 버리고 은둔했던 죽림칠현(竹林七賢) 중에 완적(阮籍)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중국 위진(魏晉) 시기 시인이다. 어느 날 그가 모친상을 당했다. 상주였던 그는 문상객들에게 평소 품어오던 자신의 감정을 각각 표현했다. 방법은 눈동자였다. 예절이 바르고 올바른 사람은 검정 눈동자(靑眼)로 보고, 무례하고 그릇된 사람은 흰 눈동자(白眼)로 흘겨 보았다. 또 다른 죽림칠현인 혜강(<5D46>康)을 검정 눈동자로 봤지만, 행실이 바르지 못했던 그의 동생 혜희(<5D46>喜)를 흰 눈동자로 쳐다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백안(白眼)’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연유다. ‘남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태도로 흘겨본다’는 뜻의 ‘백안시(白眼視)’는 여기서 유래됐다. 거꾸로 ‘청안시(靑眼視)’는 ‘따뜻하고 친근한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본다’는 의미다.

‘백안’은 당(唐)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시에도 등장한다. 그가 친구 노상(盧象)과 함께 처남 최흥종(崔興宗)의 정원을 지나며 시 한 수를 읊는다. “푸른 나무 짙은 그늘이 사방을 덮으니(綠樹重陰蓋四<9130>), 이끼는 더욱 두터워 먼지가 일지 않네(靑苔日厚自無<5C18>). 소나무 그늘 아래 모자 벗고 편안히 앉아(科頭箕踞長松下), 지나는 세상 사람들을 흘겨 본다네(白眼看他世上人).” 정원에 앉아 유유자적하는 최흥종의 여유로움이 수채화 풍경처럼 묘사됐다.

눈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에서 만들어진 또 다른 성어가 ‘괄목상대(刮目相對)’다. 삼국지에서 유래된 단어인데 장수 여몽(呂蒙)의 고사가 얽혀 있다. 공부를 게을리 했던 여몽은 손권(孫權)의 지적을 받고 열심히 책을 읽었다. 노숙(魯肅)이 여몽을 만났을 땐 학식과 식견이 눈에 띄게 높아져 있었다. 노숙이 놀라워하자 여몽은 “사흘 떨어져 있던 선비를 다시 대할 때는 눈을 비비고 봐야 합니다(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라고 했다. 이는 다른 사람의 학문이나 덕행이 크게 진보한 것을 뜻하는 말로 발전했다.

우리는 지금 백안시해서는 안 될 일을 백안시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행정수도 건설과 공항 건설을 하면서는 경제논리를 백안시하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해선 정부가 발표한 방사능 수치를 백안시한다. 그렇다고 사건의 진실과 사물의 진면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터, 눈을 비비고(刮目) 진실을 찾는 노력이 아쉽다.

한우덕 기자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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