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사퇴하니 다 덮자고?” 끝까지 가는 미국 상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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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직 사퇴했다고 모든 걸 덮을 순 없다. 불법 의혹에 대한 조사는 계속된다.”

동료 의원에 대한 미 상원 윤리위원회의 엄격한 통제가 미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다. 공화당 소속 네바다주 존 엔자인(John Ensign·53) 연방 상원의원은 2007년께 재정담당 선거참모로 일하던 기혼 여성과 혼외관계를 맺었다. 역시 선거참모였던 이 여성의 남편에겐 9만6000달러를 주고 다른 일자리도 봐줬다. 이런 사실이 공개되면서 연방 선거법과 의회 윤리규정 위반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연방수사국(FBI)과 선거관리위원회 는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엔자인은 살아날 것처럼 보였지만 문제는 동료 의원들이 포진한 상원 윤리위였다. 윤리위는 특별 조사관을 임명해 22개월 동안 샅샅이 관련 내용을 조사했다. 엔자인은 공화당 정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지난 달엔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까지 했다. 윤리위는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달 4일 엔자인을 공개 증언대에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엔자인은 고심 끝에 21일(현지시간)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불법이나 윤리규정 위반이 없었다고 확신하지만, 가족 등이 조사에 휘말리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공식 사퇴 시점도 증언일 하루 전날인 다음 달 3일이었다.

 그러나 윤리위의 바버라 복서(Barbara Boxer·71·민주당) 위원장과 조니 아이색슨(Johnny Isakson·67·공화당) 간사는 성명을 발표했다. “엔자인의 결정은 적절한 것이다. 그러나 윤리위는 이와 관계없이 조사를 계속해 조속한 시일 내에 작업을 완료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미 언론은 의원직 사퇴 뒤에도 조사가 계속되는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보지 못했던 사례라고 전했다. 윤리위는 확보한 불법행위 증거를 법무부와 FBI 등에 전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존 엔자인=네바다주에서 연방 하원의원(2선)을 거친 뒤 2001년부터 상원의원으로 일하고 있다. 수려한 외모와 뛰어난 언변으로 공화당 주요 당직을 거치며 미래의 대선 후보감으로 꼽혀 왔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성 추문 당시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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