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과정, 투병-KBS2〈병원24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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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도, 영화도 아니면서 그 어느 것 못지 않게 눈물바람을 일으키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다소 늦은 시간에 하는 탓에 시청률은 그다지 높지 않을 듯하지만 나름대로 튼튼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프로그램.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짠하지만 그뒤로 스며오는 따뜻한 인간애 때문에 매주 수요일 밤마다 우리를 텔레비전 앞으로 모이게 만드는 프로그램. 바로 〈병원24시〉다. 사실 TV에서 제대로 된 다큐를 봤던 건 〈동물의 세계〉 정도가 고작이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단순히 '병'에 관한 소개와 짜깁기, 내지는 의사들의 생활사려니 하고 짐작했었는데 〈병원24시〉는 그 차원에서 이미 한발 앞서 나가 저만치서 시청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24시〉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것은 세상에는 정말 우리가 모르는 무수히도 많은 병들이 있다는 것과 이 지구상에는 그 무수한 병들을 이겨내기 위해 오늘도 자신과 싸우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순히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몇배 더한 감동이 있었다. 왜냐하면 아픔을 딛고 새 생명을 탄생시킨 장한 여성이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왜소증'. 처음 듣는 이 낯선 병명만큼 주인공의 모습도 무척 낯설었다. 왜소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24살의 주부였다. 뼈가 제대로 성장하지 않아 얼굴을 제외한 다리와 팔, 몸은 초등학생만큼 왜소하다. 이 병은 유전적인 게 아니라 후전척인 병으로 서서히 증상이 나타났으며 중학교 때부터 엄마 등에 업혀 학교를 다니고 목발에 의지하는 생활을 해왔다고 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그녀의 남편 또한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중증 장애자다. 물론 장애인 직업학교에서 만나 사랑을 키우고 결혼을 하기까지는 다른 부부들과 딱히 다를 게 없었다. 몸이 불편한 아내를 위해 남편은 아내의 팔다리가 되어주고 또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남편을 위해 아내는 남편의 눈과 귀가 되어주면서 화목하게 살아가던 두 사람에게 아기가 생기면서 문제는 시작된 것이다.

자그마한 체구로 아기를 임신한 주인공은 불러오는 배로 인해 집안일하기도 힘들 만큼 다리에 피곤을 느껴야 했고 자연분만은 도저히 불가능해 수술로 아기를 낳아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일반인보다 폐나 기타 장기들이 작은 그녀는 부분마취를 할 수 없어 위험을 무릅쓰고 전신마취를 해야 했던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도 위험한 전신마취를 한다면 아기를 낳은 이후 그녀는 깨어나지 못하거나 그외의 합병증을 앓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아기가 부모와 같은 증상을 갖고 태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목숨과도 같은 딸을 낳았고 다행히 자신도 무사히 고비를 넘겨 건강한 모습으로 아기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상황들을 글로 옮겨놓으니 그 감동이 잘 와닿지 않고 밍숭맹숭하다. 그러나 예쁜 딸을 얻기까지 그들 부부 또한 이 글처럼 담담하게 현실과 싸워나갔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야 하는 수술 전날도 호들갑스럽게 불안함을 내보이지 않았으며 그토록 고생 끝에 마주한 딸아이의 얼굴을 보면서도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해주고 있었다. 그동안 그들이 견뎌온 고통의 무게와 그 고통을 통해 그들이 이룬 삶의 결실까지...

마지막에 아기에게 젖을 물린 채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그녀가 '왜소증'이라는 희귀한 병을 갖고도 일반인과 똑같이 자신의 아이를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라 그녀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녀처럼 겉으로 드러나건, 드러나지 않건간에 우리는 한가지씩 치유하기 힘든 병을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신만이 안고 있는 그 병 앞에서 마냥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게 아니라 어떻게든 이겨내려는 다부진 마음가짐을 갖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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