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시행땐…자바 시장의 명암] 한국 의류상 몰려와 한인 도매상들과 격돌 예고

미주중앙

입력

한인 의류상들이 활발하게 사업을 펼치고 있는 샌피드로홀세일마트 전경. 아래 작은 사진은 경기도 북미사무소가 LA 페이스에 오픈한 '경기섬유마케팅지원센터'.

LA 다운타운 자바 옷 시장은 3개 상인 단체로 나눠진다. 도매상과 원단상 그리고 봉제상이다. 봉제업체는 원단상이 제공하는 직물을 가지고 박음질을 해 옷을 만들고, 의류상이 전국 각지로 홀세일을 하게 된다. 독립된 개인 사업자들이지만 하나의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지난 3월엔 한인 3개 단체장들이 모여, ‘하나된 자바’에 뜻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3개 단체는 요즘 고민에 빠져 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양국 의회 비준을 거쳐, 시행되면 이익에 따른 이합집산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당장 경기도 북미사무소는 한인 의류상들의 중심인 LA페이스에 '경기섬유마케팅지원센터'를 내고 본격적인 업무 채비를 하고 있다.

자바 한인 원단상인들은 대부분이 수입상으로 니트직물을 경기 지역에서 수입하고 있다. 경기도와 자바 원단상의 소싱이 같은 곳인 셈이다. 자바 도매상들이 원단을 어느 쪽에서 구매할 것인 지를 두고 경쟁이 불가피해 진다.

봉제업체들도 FTA가 시행되면 의류상들이 하청을 한국으로 돌릴 움직임을 보이자 아쉬운 표정들이다.

그 뿐 아니다. 한국의 대형 의류업체들은 미국시장 진출도 꾀하고 있다.

자본력을 앞세운 한국의 대형 의류업체들은 어쨌든 자바시장을 디딤돌로 삼을 것이 뻔하다.

자바가 한국 의류상과 한인 의류상들의 '전쟁터'가 될 공산이 있다. 벌써부터 한인 의류상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적을 키울 일 있는가"라며 FTA가 갖는 긍정적인 면보다 부담스런 이면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기도 하다. FTA 시행을 앞두고 자바 한인 상인들이 갖는 고민과 해결책이 없는 지 짚어 본다.

◆ 의류업계

아직까지 의류업계에서는 중국 의존도가 높다. 업계에 따르면 한인 의류업체들이 유통하는 의류의 70% 이상이 중국산일 정도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생산과 수입에 대해서는 많은 불만을 갖고 있다. 봉제 기술이 낙후하고 또 원단의 질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완제품을 수입하는 데 2~3개월씩 걸려 비즈니스 꾸리기가 만만찮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의류상들은 FTA가 되면 15~30% 가량 원가 절감효가도 있고 질 좋은 상품을 중국보다 빠르게 수입할 수 있는 한국으로 수입선을 바꿀 생각을 하고 있다.

의류협회에서는 아예 회원사들을 설득해 경기도 동두천 지역에 봉제단지까지 조성해 대량 생산과 수입을 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FTA가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한국의 의류상들도 FTA 효과에 편승해 미국 진출을 노리고 있다.

이미 한국의 패션 메카인 동대문 두산타워 입점 업체들은 수년 전부터 미국의 각종 의류박람회에 참가하며 시장 분석을 해왔다.

의류협회 크리스토퍼 김 회장은 "사실 자바상들은 아직 FTA에 대해 분명한 이해를 갖고 있지 않다. 언론에 나오는 긍정적인 면을 반기면서도 막연한 두려움도 갖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특히 한국의 의류상들이 막강한 자본력과 시스템화된 정보력을 앞세운다면 체계적이지 못한 자바 상인들의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 원단업계

원단협회는 현재도 대부분의 니트 직물을 한국에서 들여 오고 있다. 관세가 사라진다면 그 만큼 수입단가를 낮출 수 있다.

문제는 경기섬유센터와 같은 직영 조직이다. 경기섬유센터는 도내 1000여개 생산업체들이 생산한 물건의 판매를 지원하는 정도지만 직접 세일에 나설 단체가 들어서기 시작하면 자바 원단상들은 가격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의류상들이 LA페이스에 경기섬유센터를 내준 것을 두고 '적을 돕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낼 만도 하다.

원단협회의 구본준 회장은 "한국 상인들이 과연 자바의 외상거래를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겠는가"라며 얼마든지 경쟁을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불안을 떨치지는 못했다.

구 회장이 말하는 외상거래는 물론 무기가 될 수는 있다. 한국 상인들이 90~120일이나 되는 외상거래를 감당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자바 의류상들도 기존 거래에서 오는 편리성을 완전히 외면하기도 어려운 탓이다.

◆ 봉제업계

봉제업자들은 이미 FTA에 버금가는 폭탄을 한 차례 맞은 바 있다.

의류상들이 5~6년 전부터 인건비가 싼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로 봉제 하청을 대량으로 옮기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에도 동두천 봉제단지 조성 소식이 나오면서 '전업이라도 해야겠다'는 푸념이 많았다.

가뜩이나 수시로 이뤄지고 있는 가주 및 연방 노동청의 노동법 위반 단속으로 힘든 판에 하청라인마저 끊긴다면 사업을 접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들린다.

FTA가 시행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봉제 파트일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패스트패션'의 진원지인 자바 봉제업체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쪽 보다는 아무래도 인건비가 저렴하고 신속한 제작을 요할 때는 자바 봉제공장만큼 경쟁력을 갖춘 곳도 없기 때문이다. 열악한 봉제업자들은 어려움이 커지겠지만 경쟁을 통해 살아 남은 업체들은 오히려 판이 커졌기 때문에 더욱 안정적 성장을 할 수도 있다는 견해다.

◆ 해결책

자바시장은 어쨌든 미주 한인 경제의 젖줄이자 자랑이다. 이 곳에서 한인들이 생산한 옷은 전세계로 퍼져 나간다. FTA가 시행되면 30~50억 달러로 추산되는 자바 매출의 볼륨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의류협회 이윤세 이사장은 "양쪽 다 득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FTA 시행에 앞서 자바상인들끼리 도움이 필요한 내용들을 논의하고 한국 상인들과의 전략적 제휴로 상호 이익을 도모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30년 이상된 자바의 노하우를 한국 상인들이 금방 이해할 수는 없다. 미국 바이어나 소비자들의 옷에 대한 선호도부터 노동법 관련 이해 언어 소통 등의 기반은 자바상인들이 가진 큰 자산이다.

한국 쪽에선 이들 자바상들을 앞세워 판매나 시장개척에 활용한다면 미국시장에서 '윈-윈'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문호 기자 moonkim@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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