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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지리산 반달곰이 새끼를 낳았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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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

지난달 지리산에서 낭보가 들려왔다. 지리산 반달가슴곰이 새끼를 낳은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대견하고 반가운 일이다.

 곰 한 마리 태어난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 되물을 수 있다. 명색이 여행기자도 처음엔 무심했다. 사람 사는 것도 팍팍한데, 다른 나라에서 곰을 사들여 지리산에 풀어놓는 모습이 요란 떠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난해 지리산 자락에 있는 국립공원종복원센터(이하 센터)를 취재하고 나서 생각이 싹 바뀌었다. 곰 한 마리가 야생에서 태어났다는 건 진실로 위대한 일이다!

 반달곰 복원사업은 2004년 시작됐다. 러시아·북한 등지에서 사온 반달곰을 지리산 자락에 방사했다. 여태 30마리를 풀어놨고, 야생에서 5마리가 태어났다. 그러나 시방 지리산에 사는 반달곰은 18마리가 전부다. 나머지는 죽었거나 센터에서 보호받고 있다.

 반입 당시 반달곰은 돌이 안 된 놈들이었다. 녀석들은 그때부터 지리산에서 홀로 살았다. 야생동물은 생존법의 절반을 어미로부터 배운다. 그러나 한반도 야생곰 복원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일방적으로 떠맡은 녀석들은 어느 날 갑자기 혈혈단신 낯선 지리산 자락에 내던져졌고, 이후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혼자서 먹이를 구했고, 혼자서 겨울잠을 잤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생존을 넘어 마침내 번식에 성공했다. 반달곰이 야생에서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은 그래서 대단하다. 자연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곰은 숲의 건강성을 상징하는 존재다. 곰은 하루에 5㎏을 먹고, 하루 활동면적이 30㎢가 넘는다. 곰은 먹은 것의 대부분을 그대로 배출한다. 다시 말해 곰은 온종일 먹고 싸며 돌아다닌다. 곰 배설물에서 종자가 나오는데, 그 종자의 발아율이 일반 종자를 심었을 때보다 세 배 높다. 곰은 살아있기만 해도 숲 속 식물의 서식지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 곰처럼 큰 야생동물이 숲에 산다는 건 숲 생태계가 다양하다는 뜻이다.

 세상에 막 나왔을 때 곰은 300g밖에 되지 않는다. 500mL들이 우유보다 가벼웠던 놈이 서너 해만 지나면 100㎏이 훌쩍 넘는다. 지난달 발견한 새끼는 얼추 3㎏ 크기로 보였다. 멀찌감치서 망원렌즈로 촬영한 결과다. 태어난 지 두어 달 지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가까이서 관찰한 게 아니어서 암컷인지 수컷인지도 모른다. 어미 곰은 4월이 지나면 새끼를 데리고 굴 밖으로 나오는데, 그때나 돼야 성별을 알 수 있다.

 이태 전 이맘때 어미와 새끼가 함께 얼어 죽은 일이 있었다. 죽기 직전, 어미가 낙엽을 끌어다 새끼를 덮어주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어미는 팔자가 드세 제 어미로부터 세상과 맞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지만, 어미는 어미가 된 순간부터 어미의 역할을 다했고 그러다 죽었다.

 이번에 새끼를 낳은 어미는 아마도 새끼에게 덫 피하는 법을 제일 먼저 가르칠 것 같다. 이태 전 덫에 걸려 오른쪽 앞발 발가락이 잘렸던 그 녀석이어서다. 센터가 지난해 지리산에서 수거한 덫과 올무는 모두 1368개였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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