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도전 21- 연출.극작가 조광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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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왕성한 활동으로 주목받았던 극작가 겸 연출가인 조광화(35)씨와 함께 텅 빈 호암아트홀로 들어갔다.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그가 감탄을 터뜨렸다.

"무대가 비니까 더 좋군요. 흰 도화지처럼 뭐든 그릴 수 있잖아요. 우리 연극이 어느 순간부터 관객을 채우려고 시작하면서 연극적 상상력이 줄어들었어요."

연극적 상상력? 대학로 소극장 전체가 아사 직전의 상황에서 혹시라도 배부른 소리는 아닐까.

그는 영상세대답게 영화 얘기를 많이 했다. '영웅본색''메트릭스''박하사탕'등을 예로 들었다. 변변한 스타 하나 키워내지 못하고, 이런저런 과감한 실험도 시도하지 못한 연극계가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말을 쏟아냈다. 요지는 모험을 주저 않는 청년정신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

"TV드라마나 여화를 보세요. 관객에게 대화하려고 메시지.캐릭터등을 열심히 개발합니다. 하지만 연극은 아직 이 시대 관객의 감성을 읽으려는 시도가 활발하지 못해요."

그는 지난해 나름대로 많은 실험에 도전했다. 비록 흥행에서 실패했지만 서구의 SF적 상상력에 불교의 윤회사상을 결합한 '철안붓다'를 쓰고 연출했고 서양고전 '햄릿'에 활달한 록음악을 입힌 '록 햄릿'을 썼다. 또한 오는 23일까지 무대에 오르는 '황구도'의 각본도 썼다. 개의 사랑 얘기를 의인화해 인간사를 풍자한 창작 뮤지컬이다.

"우리 연극은 너무 양분화됐습니다. 한편에선 웃기면 그만이다는 식의 신변잡기로 흐르고 다른 한편에선 삶을 얘기한다면서 너무 무겁게 흘러 관객을 소외시키는 경우가 많았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반추하는 일에 연극계가 소홀했다는 일갈이다. 관객이 무대를 멀리하는 것도 연극인의 자업자득일지도 모른다고 꼬집는다.

그러나 그는 연극의 미래에 희망을 건다. 사회가 정신없이 핑핑 돌아갈수록, 가벼운 영화.드라마가 성행할수록, 사이버라는 가상공간이 위력을 발휘할수록 인간의 직접적 만남을 진득하게 기약하는 연극의 진가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다.

"정말 사람을 그리워하게 될 것입니다. 현란한 뮤직비디오에 흠
뻑 빠져도 결국 라이브 공연장으로 달려가잖아요. 연극은 앞으로 바로 이런 자리를 풍성하게 마련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물론 전제조건이 있다. 다른 영상매체를 부단히 공부하고, 그 장점을 뽑아내 연극의 현장성.즉흥성을 살찌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연극의 '장엄미'를 강조했다. 경박하지 않되, 동시에 부담스럽지도 않은 일종의 균형잡힌 무게감이다. 쉽게 말해 관객을 흥분시키되 결국 관객을 다시 현실로 끌어내리는 역할이다. 바로 여기에서 현실과장이나 공상만을 종종 추구하는 영화와 연극이 갈라진다고 설명한다.

그는 올해엔 연출보다 희곡 집필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연극의 기초인 희곡에 정진하겠다는 각오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의 고교생 세 명을 통해 젊은이를 억압하는 우리 사회의 비틀린 구조를 비판한 '13반의 아이들'의 개요를 완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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