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가는 색과 문양의 전통예술 채화칠기 비법 이어가는 이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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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가족전에 출품된 ‘운학문 관복함(雲鶴紋 官服函·구름과 학 무늬를 그린 관복 담는함)’ 앞에 선 가족들. 왼쪽부터 최종관씨, 딸 다영씨, 아들 민우씨, 아내 김경자씨.


“점차 사라져가는 전통의 길을, 온 가족과 함께 지키게 되어 기쁩니다. 채화칠기는 천년이 가도 색이 변하지 않고 모든 재료를 자연으로부터 얻는 친환경의 전통예술이죠. 채화칠기의 전통을 살리고, 명품화해 세계로 수출하는 것이 저와 제 가족의 목표입니다.”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채화칠기 가족전을 여는 최종관(60)씨의 말이다. 아내 김경자(52)씨, 배재대 국제통상대학원 칠예과에 재학 중인 아들 민우(28)씨, 부여의 전통문화학교에 재학 중인 딸 다영(21)씨 등 네 가족이 전부 전시에 참여했다. 몇몇 ‘칠공예 가족’이 있긴 하지만, 가족전시회까지 여는 것은 유례가 없다.

 경력 40여 년의 최종관씨는 중요무형문화재 나전칠기장 고 김태희 선생을 사사했다. 처음엔 나전칠기를 하다 스승의 권유로 채화칠기로 방향을 바꿨다. 아내 김경자씨는 결혼과 함께 칠공예를 시작했다.

1982년 일본을 다녀온 남편 최씨가, 10대 이상 대물려 전통을 지키는 일본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받아 돌아오자마자 아내를 제자 1호로 삼았다. 처음엔 ‘여자가 무슨 기술을 배우냐’는 따가운 시선도 있었지만 김씨는 1999년 전승공예대전에 입선하며 실력을 쌓았다.

어려서부터 칠기에 둘러쌓여 자란 아들과 딸은, 자연스레 칠의 세계에 입문했다.

“옆에서 보면서 몸으로 제작과정을 익히는 데만 10~15년은 족히 걸리기 때문에 대물린 가족경영이 최고”라고 최씨는 말했다. 아들과 딸에게는 제작 노하우의 이론화도 기대하고 있다.

 전시기간 중 23일은 최씨의 회갑일이다. 회갑연을 겸한 가족전인 셈이다. 2년6개월 간 꼬박 준비한 작품은 총 43점. 부부는 전통문양을 살린 소반과 그릇을, 아들과 딸은 현대적 미감을 더한 조명·화병·다기세트 등을 내놓았다. 가구와 함도 선보인다.

 채화칠기는 옻나무 수액과 천연안료를 배합한 물감으로 칠기 표면에 다양한 색과 문양을 그려넣은 전통예술품이다. 통일신라시대까지 성행하다 고려시대 이후 쇠퇴했다. “심지어 일본의 전통예술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아 안타깝다”고 최씨는 말했다. 02-338-3636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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