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욱의 과학 산책] 생존율인가, 삶의 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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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의사들은 자신을 환자로 상정하는 경우 사망 위험이 크더라도 부작용이 없는 요법을 선호한다. 하지만 환자들에게는 삶의 질과 상관없이 생존율이 높은 요법을 권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사회가 발간하는 ‘내과의학 회보(Archives of Internal Medicine)’ 11일자에 실린 내용이다.

연구팀은 미국 전역에서 1차 진료를 담당하는 일반내과의와 가정의를 대상으로 두 가지 시나리오를 주고 설문조사를 했다. 질문은 두 종류 : “당신이 환자라면 어떤 요법을 택하겠습니까?” “환자에게 어떤 요법을 권하시겠습니까?”

#시나리오 1 : 결장암 환자에게 두 가지 수술법이 있는데 완치율은 80%로 동등하다. 한 수술은 사망률이 약간 높은 대신 부작용이 거의 없다. 다른 수술은 사망률이 낮은 대신 인공항문, 만성 설사, 장폐색 등의 위험이 약간 있다.

응답 : 자신이 환자라면 사망률이 높고 부작용이 적은 수술을 택하겠다고 답변한 비율이 38%였다. 그러나 환자에게 이를 권하겠다는 비율은 25%에 불과했다. 500명에게 설문을 보내 242명의 응답을 받은 결과다.

#시나리오 2 : 신종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된 환자가 있다. 방치하면 10%가 사망하고 30%는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면역글로불린 치료를 받으면 이런 확률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치료법 자체의 부작용으로 1%가 사망하고 4%는 영구적인 신경마비가 생긴다.

응답 : 자신이 환자라면 그런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답변한 비율이 63%에 달했다. 그러나 환자에게 이 치료를 받지 말라고 권하겠다는 비율은 49%였다. 1600명에게 설문을 보내 698명의 응답을 받은 결과다.

요약하자면 많은 의사가 자신이라면 받지 않을 치료를 환자에게 권한다는 뜻이 된다. 이와 관련, 일리노이대의 심리학자 앨런 슈워츠(Alan Schwartz)는 “의사들은 환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데 능하지 못하다”면서 “이번 조사 결과는 의사들에게 경종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말했다. 그는 “환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의사에게 알리고 소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소통은커녕 무얼 물어보기도 쉽지 않다. 몇 년 전 필자가 유명 대학병원 암센터에서 겪은 일이 그렇다. 유방암 수술 후 예방적인 화학요법을 권하는 의사에게 물었다. “만일 선생님의 어머니시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의사는 화를 냈다. “그런 질문에 대답할 수 없어요!” 30분 기다려 3분 진료하는 동안 벌어졌던 일이다.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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