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활동 나선 아빠·엄마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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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똘똘 뭉친 아빠, 엄마들이 있다. 거창한 악기도 무대를 휘어잡을 가창력도 없지만 가족과 이웃에게 음악을 들려줄 수 있어 행복하다는 이들을 만났다.

프로 같은 아마추어 통기타 밴드_주부들의 반란

 ‘주부들의 반란’은 용인시 수지구에서 이미 입소문 난 밴드다. 그도 그럴 것이 2006년 밴드 결성 후 ‘7080 통기타 여행(2006년)’‘주부들의 반란-첫 키스의 추억(2007년)’ 2장의 앨범을 냈다. 원미연·강수지 등 가수들로부터 합동공연을 제안 받기도 했다. 리더 정하나(42·수지구 풍덕천동)씨는 KBS ‘사랑과 전쟁’ 삽입곡을 부르고 개인앨범을 발표하며 가수로 당당히 데뷔했다. 이후 자선공연 등 용인시의 크고 작은 공연 무대에도 서고 있다.

 “주부들이 살림만 하란 법은 없다”며 이들이 밴드 활동에 나선 건 2006년이었다. 네이버카페 수지사랑(cafe.naver.com/sujilove)을 통해 알고 지내던 ‘노래 좋아하는 아줌마들’이 모여 보컬 그룹을 결성한 것. KBS ‘사랑과 전쟁’ 음악감독을 역임하고 용인시 여성회관 노래교실 강사로 활동하는 정기수(60·기흥구 언남동)씨의 권유도 한몫했다. 리더 정씨는 “우연히 노래방에 갔다가 밴드하기 알맞은 음색이라는 평을 들었다”며 “이후 노래방 테스트를 거쳐 멤버를 모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부들이 매주 시간을 내 연습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첫 멤버는 1년 만에 활동을 접어야 했다. 정 강사와 정씨는 ‘여기서 멈추기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해 2기를 만들었다. 올해부터는 3기 멤버가 합류해 현재 5명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멤버가 바뀌면서 밴드 색깔도 변했다. 3기는 주로 7080가요를 연주하는 통기타 밴드다.

 신입 멤버인 장나연(47·수지구 죽전동)씨는 “밴드 활동이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만족해 했다. 정현주(48·수지구 상현동)씨는 “화음 맞추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처음에는 기타 따로, 노래 따로 놀다가 다른 사람과 어우러져 연주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서 더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밴드 활동을 하면서 가족과 함께할 일도 많아졌다. 김경(46·수지구 동천동)씨는 주말이면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과 함께 기타를 연주한다. 박인경(52·수지구 상현동)씨는 요즘 부쩍 기타에 관심을 보이는 남편과 음악 얘기를 나눈다.

 이들은 5월 29일 케이블 방송의 한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새롭게 멤버를 구성한 후 갖는 첫 공연이어서 긴장될 법도 한데 ‘타고 난 무대 체질’인지 다들 떨림보다는 기대가 큰 눈치다. 박씨는 “노래를 할 때면 저절로 흥이 난다. 우리가 즐거우면 듣는 사람도 신이 나는 것 같다”며 파이팅을 외쳤다.


동네에서 노래하며 노는 아빠들_동노놀

 ‘…/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시절 / 내 맘속에 추억만 남아 / 오늘도 눈오는 밤 그날 생각하네 / …’(조하문의 ‘눈오는 밤’)

 봄빛 가득한 지난 2일 오후, 때아닌 눈 타령에 고양여성민우회 풍물방(고양시 백석동)이 들썩였다. “잘한다” “멋지다”는 찬사에 노래를 부르는 ‘동노돌’ 멤버 6명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동노놀은 ‘동네에서 노래하며 놀아요’라는 뜻의 노래 모임이다. 지역 내 소소한 행사가 있을 때면 빠지지 않고 무대에 선다. “평범한 아빠들이 부르는 노래여서 듣는 사람들이 부담없어 한다”는 게 모임을 이끌고 있는 김윤석(42·회사원)씨의 귀띔이다. 모임은 2009년 12월 아이들이 다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 10주년 행사를 위해 급조한 ‘아빠 중창단’이 발단이 됐다. 뒤풀이장에서 다들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며 내친김에 정기모임까지 만들었다. 직장생활에 쫓겨 모임이 흐지부지되던 지난해 3월, 무작정 정기공연을 3개월 후로 정해놓고 본격적으로 연습에 들어갔다. 각자 독학하다시피한 기타 연주 실력을 다듬고 보컬 트레이닝도 받았다. 하모니카·봉고·카바사(타악기) 등 다룰 수 있는 악기는 죄다 들고 모여 맞춰봤다.

 “퇴근 후 저녁 9시나 돼야 모여 새벽 1~2시까지 연습하다 보면 ‘사서 고생’이란 말이 실감났다”는 백경선(42·사업가)씨는 “그러다 서로 ‘필(feel)이 통해 노래와 연주를 완성해낼 때의 짜릿함은 말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라며 환하게 웃었다.

 멤버들은 같은 동네(고양시 행신동)에 산다. 이웃으로, 공동육아 어린이집 아빠들로 알고 지낸 게 4~5년. 음악적 취향이 제각각이면서도 마찰 없이 모임을 꾸려갈 수 있는 이유다. 공연도 가능한 한 행신동에서 한다. 모임 이름처럼 가족·이웃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서다. “동네를 벗어나면 울렁증이 생겨 노래를 못한다”는 게 전성원(45·의사)씨의 얘기다. 종종 아이들과 함께하는 무대도 마련한다. 지난 1월 제 2회 정기공연에서는 전성원씨가 아내와 함께 우크렐라를 연주해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가족은 동노놀의 열성팬이자 제2 멤버들이다.

 박승현(44·음반제작)씨는 “아빠들이 부른 노래를 아이들이 흥얼거리는 걸 보면 뿌듯해진다”며 “아이들이 커서 함께 무대에 서는 것도 꿈꿔볼 일”이라고 했다. 김윤석씨는 “공연을 본 이웃이 ‘이런 동네에서 살아 행복하다’고 하더라”며 “멤버들끼리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노래하기로 했다”고 자랑했다.

[사진설명] 1. 3기 구성 후 첫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인 ‘주부들의 반란’ 멤버들. 장나연·정하나·김경·박인경·정현주씨(앞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 2. ‘동노놀’ 멤버들. 전성원·백경선·박승현·이정곤·김윤석·이상덕씨(앞 줄 왼쪽부터 시계반대 방향).

<김은정·신수연 기자 hapia@joongang.co.kr 사진="김진원" 기자,김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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