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재평가는 학자들에게 맡겨둬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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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호 04면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성균관대 사학과 서중석(63·사진) 교수는 “세계사에서 한국·일본·중국은 근대 세계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나라들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한민국의 오랜 역사적 뿌리를 고려할 때 ‘건국’이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으며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서 교수를 만나 이승만 재평가 논란에 대해 물었다.

‘건국의 아버지’ 표현 반대하는 성균관대 서중석 교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평가가 엇갈린다. 그가 하와이에서 활동할 때부터 그랬다. 집권 기간에도 ‘민족의 태양’ ‘국부’로 불리는가 하면 국내 4대 신문은 그를 강한 논조로 비판했다. 6월 항쟁 이후엔 이승만 평가에 이념까지 끼어들게 됐다.”

-이 대통령의 잘잘못 평가는 어떻게 진행되는 게 바람직한가.
“정치권이 뛰어들거나 언론이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학자들에게 맡기는 게 좋다. 사실과 자료를 놓고 경쟁하면 된다. 유영익 전 연세대 교수가 보내 준 자료를 꼭 읽어 보는데, 그와 생각이 다르지만 도움이 많이 된다. 그런 식으로 교류하면 된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선 진보 학자들이 재평가를 많이 하는데.
“진보적 학자 중 이승만 연구자가 많지 않다. 단독정부 수립과 5·10 선거를 둘러싼 논란이 가장 컸다. 부정선거, 양민학살, 부패 문제는 너무 확연해 논쟁이 잘 안 된다.”

-이 대통령의 교육 투자가 박정희 시대 경제발전의 바탕이 된 것 아닌가.
“해방 후 교육열이 급팽창한 것은 이승만 정부가 홍보 같은 것을 해서가 아니다. 교육을 잘 받아야 좋은 자리에 갈 수 있다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승만 정부가 잘한 게 있다면 전후 어려움 속에서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건물을 짓는 데 투자한 것이다.”

-외교적 업적은 어떤가.
“미국이 이승만의 의견을 잘 들어줬거나 원조를 특별히 많이 준 것은 아니었다. 1950년대 중반 한·일 관계가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었는데 충동적인 이승만의 반일 운동으로 기회를 놓쳤다. 평화선 설치는 잘한 것이지만 의사 출신 양유찬을 주미 대사로 10년 가까이 쓰는 바람에 설득력 있는 대미 외교를 펴지 못했다. 영국을 비롯한 우방들과도 사이가 안 좋았다.”

-정치이데올로기는 어떻게 평가되나.
“그의 천성은 자유민주주의와 잘 안 맞았다. 자기 노선과 다르면 불편한 마음을 가졌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았고 ‘경찰국가’ 이야기까지 나왔다. 장택상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승만은 ‘국장이 하는 일’까지 간섭했다.”

-이승만을 빼고 자유민주국가의 탄생을 생각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틀림없이 훌륭한 자유민주주의 헌법이다. 국회 속기록을 보면 이승만 쪽이 헌법 제정 과정에서 가장 보수적이었다. 다른 국회의원들의 공이 컸다. 사회 전체의 역량도 작용했고 미국도 많이 도와 줬다. 이승만은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유린하고 짓밟았다.”

-그가 없었다면 48년이나 6·25 때 공산화됐을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를 지켜준 가장 큰 힘은 역시 미국이다.”

-그가 아니라 부하들이 잘못을 저지른 것이라는 시각은 맞나.
“말이 안 된다. 이승만과 맞먹을 수 있는 머리는 조봉암·김대중 정도다. 이승만은 모든 걸 갖춘 사람이었다. 번개처럼 파악하는 감각과 능력이 있었다. 그는 사태의 전개도 소상히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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