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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부아르 대통령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14호 33면

서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는 우리에게 축구 잘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 나라가 대선 불복 사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내전 상황까지 갔다가 국제사회의 무력 개입으로 가까스로 사태가 수습됐다. 사실, 이 나라 역대 대통령의 행적을 살펴보면 권력 앞에선 법이고 원칙이고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1960년 독립 후 초대 대통령이 된 펠릭스 우푸에부아니는 93년 12월까지 장장 33년을 버텼다. 당시까진 세계 3위의 장기집권이었다. 90년까진 일당독재를 했다.

그가 후계자 지명을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자 국회의장 앙리 코낭 베디에와 총리 알라산 우아타라가 권력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 베디에가 우아타라를 밀어내고 권좌를 차지했다. 베디에는 95년 대선 직전 우아타라의 출마를 원천봉쇄했다. 야당의 보이콧 속에 재선에 성공한 그는 부정부패로도 악명을 떨쳤다. 군부가 99년 성탄 전야에 쿠데타를 일으키자 자국 주둔 프랑스군 부대로 달아나 성탄절을 보낸 뒤 다음날 망명길을 떠났다. 이듬해 치러진 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부하였던 전직 내무장관에게 패배했다. 그럼에도 이에 불복하고 대선 후보로 등록하려다 헌법재판소에 의해 거부됐다.

군부는 차기 대선을 관리할 과도정부 수반으로 로베르 게이 장군을 앉혔다. 게이는 베디에가 우아타라를 탄압하려고 군부에 내렸던 출동 명령을 거부했다가 쫓겨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맡겨놓은 생선을 탐하는 고양이로 둔갑했다. 자신이 차기 대선에 나선 것이다. 심지어 헌법을 고쳐 부모 모두 코트디부아르 출신이 아니면 출마할 수 없도록 했다. 이웃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부모를 둔 유력 후보 우아타라의 손발을 묶는 조치였다.

그런데 게이는 만만하게 여겼던 야당 투사 로랑 그바그보에게 의외의 패배를 당했다. 그는 선거 결과에 불복한 채 권력이양을 거부했다. 대통령 자리가 ‘하이재킹’ 당할 위기에 처하자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그 덕에 권력은 그바그보에게 무사히 넘어갔다. 게이는 2002년 9월 부인과 함께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피살됐다. 시신은 4년간 영안실에 방치되다 2006년 8월에야 장례를 치렀다.

프랑스의 파리 7대학 역사학 박사에다 교수 출신인 그바그보는 투사형 정치인이다. 교수노조 파업에 참가했다가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74~88년 프랑스 망명 뒤 귀국했다. 90년 다당제 도입 뒤 첫 선거에 야당 후보로는 유일하게 서슬 퍼랬던 초대 대통령에게 맞서 출마했다. 92년부터 2년간 옥살이까지 했다.

그런 그도 권력 중독의 부작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모양이다. 대선 불복의 피해자가 될 뻔했던 그가 이번엔 가해자로 역할을 바꾸었다. 지난해 대선에서 집념의 우아타라에게 패배하자 역시 권력이양을 거부했다. 그러다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지하벙커에서 체포됐다.

코트디부아르의 역대 대통령들은 그래도 전 세계에 좋은 선물을 하나 남겼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니, 뽑아준 국민이 감시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 말이다. 가슴이 뜨끔한 정치인이 어디 한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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