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책이 사라진다니요 수저·망치·가위가 없어졌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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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책의 우주
움베르토 에코
장클로드 카리에르 지음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384쪽, 1만4000원

책에 대한 책이자, 책을 향한 헌사다. 인터넷과 전자책, 디스켓과 하드디스크…. 저장매체가 날로 진화하는 세상에서 종이책은 사라질 것인가? 두 책벌레가 최근 십 수 년간 반복된 이 질문에 머리를 맞댔다. 이탈리아의 소설가·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와 프랑스의 극작가 장클로드 카리에르의 대담집이다. 묻고, 답하고, 의기투합하고, 경쟁하고. 두 사람은 대담의 묘미를 보여준다.

 화형대 위의 악마, 범접할 수 없는 신의 분신, 그리고 이제는 디지털 시대의 총아. 한때 책은 금기가 될만큼 위협적 존재였다. 두 사람은 파피루스에서부터 종이책에 이르는 책의 흥망성쇠를 말하며, 책의 미래를 점치기도 한다. 이들 중 누구도 활자의 위기를 말하지 않는다. 이들이 말하는 것은 희망이고, ‘책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며, 여유다.

 “책은 수저나 망치나 바퀴, 또는 가위 같은 것입니다… 수저보다 더 나은 수저는 발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읽지 않은 그 모든 책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약속하고 있지요… 모든 문명의 역사를 통틀어 지금처럼 서점이 많은 시대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이상 에코)

 “오늘날만큼 쓰기와 읽기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한 때는 없었어요. 읽고 쓸 줄을 모른다면 컴퓨터를 사용할 수가 없으니까요.”(카리에르)

 위트도 빼놓지 않았다. “집에 불이 난다면, 어떤 책부터 보호하겠느냐”는 카리에르의 질문에 장서를 위해 거액의 보험까지 들어둔 고서 수집가 에코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앞에서 책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긴 했지만, 그래도 지난 30년간의 내 글들이 담겨 있는 250기가의 외장형 하드디스크를 우선 빼내겠어요.”

 책은 기억의 저장매체이며, 인간 정신의 도정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가 아파트 평수를 차지하는 서가의 책들을 분류하고 폐기하듯, 인류는 끝없이 책을 선별해 왔고 그것이 문화를 형성했다. 책의 위기라는 지엽적 주제에서 출발했지만 대화는 인간, 역사, 문화, 미래로 확장된다. 대화의 저변에 깔린 것은 이들이 평생 책을 통해 얻은 교양이다. 수 천 년을 이어 온 이 아날로그적 매체, 읽고 나면 문득 바삭거리는 종이책 한 권 펼쳐보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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