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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엄마를…』 아마존 소설 톱 10 이끈 번역자 김지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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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엄마를 부탁해』의 번역자 김지영씨는 변호사 일을 하다가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 LA카운티 미술관으로 직장을 옮겼다. 미술관을 위한 지원금을 요청하는 일을 한다. 김씨는 “번역은 변호사와 함께 나의 두 개의 커리어 중 하나”라며 “앞으로도 출판사에서 요청하면 소설 번역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김지영씨 제공]

소설가 신경숙(48)씨의 장편 『엄마를 부탁해』(영문판 ‘Please Look After Mom’)가 미국에서 인기다. 인터넷서점 아마존(www.amazon.com)의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5일 발매 첫날 100위권에 진입한 데 이어 둘째 날 47위, 사흘째인 7일 현재(현지시간) 34위에 올라 있다. 한국문학 초유의 ‘사건’이다. 미국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도 다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6위에, 인터넷서점 yes24 순위에서 한글판과 영문판 각각 국내·국외 종합부문 1위에 올랐다. 2008년 첫 출간된 『엄마를 부탁해』는 국내에서 170만여 부가 팔렸었다.

미국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은 훌륭한 번역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제럴딘 브룩스는 “신씨가 정제되고(spare) 절묘한(exquisite) 문장으로 가족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다”고 평했다. 번역자 김지영(30)씨를 e-메일 인터뷰했다. 김씨는 박완서의 소설 등을 영어로 옮긴 번역가 유영난(57)씨의 딸이다.

 -번역에 대한 칭찬이 많다.

 “뿌듯하다. 원래 영어로 쓴 작품인 것 같다는 평을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 미국에서도 통할 것 같았나.

 “그렇다. ‘엄마’라는 주제가 보편적이고, 머리보다 가슴에 호소하는 작품이다. 번역을 하며 미국 친구들에게 책 얘기를 했더니 대부분 사보고 싶다고 했다.”

 -번역자인 당신에 대한 관심도 크다.

 “놀라운 일이다. 한국소설이 아마존 소설 분야 10위 안에 진입했다는 것 자체가 사건이다. 보통 번역자는 숨은 존재인데, 작품에 대한 관심이 많다 보니 영국의 BBC 라디오방송이 인터뷰하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신경숙

 -번역 과정이 궁금하다.

 “작가의 에이전트로부터 2009년 5월 40여 쪽 샘플번역을 의뢰받았다. 8월에 이를 마쳤고, 9월에 크노프가 출간을 결정했다. 전체 번역을 끝낸 건 지난해 2월이다. 한국문화를 전혀 모르는 독자를 겨냥한 작업이었기에 신씨와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어머니가 신씨의 단편 ‘풍금이 있던 자리’를 영역해서 2003년 하버드 리뷰에 실은 적이 있다. 신씨 작품은 그때 처음 접했고 실제로 만난 건 지난해 10월이다.”

 -번역의 원칙이 있다면.

 “한국어로 읽었을 때와 비슷한 감흥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는 학자가 아니다. 참을성이 없다. 번역에서 사투리, 존댓말은 당연히 잃어버리는 요소다. 전라도 사투리를 미국 남부 사투리로 번역하면 독자가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문장을 잘게 쪼개기도 하나.

 “물론이다. 나는 문장 대 문장 번역을 하지 않는다. 영어 특유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한 문장을 여럿으로 쪼개기도, 여러 문장을 한 문장으로 합치기도 한다. 한국어로 시적인 문장은 영어로도 시적으로 읽혀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선호하는 문장 대 문장 번역을 고집해서는 미국에서 ‘stilted(부자연스러운)’라는 평을 받기 십상이다.”

 -‘Mother’ 대신 ‘Mom’을 썼다.

 “미국에서는 어른도 ‘Mom’이란 단어를 쓴다. 한국에서 엄마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영국판 제목은 ‘Please Look After Mother’다.”

 -가장 어려웠던 대목은.

 “원문에 ‘인디오 여인’이라는 단어가 있다. 남미의 원주민을 지칭한 것인데, 영어에서 ‘Indio’라는 단어는 생소하다. ‘Indian’은 미국에서는 북미 원주민을 뜻하는 말이라 좀 꺼렸으나 여러 차례 편집자와 의견을 주고받은 후 결국 ‘Indian’으로 하기로 했다.”

 - 변호사였다. 번역을 하게 된 이유는.

 “뉴욕의 출판사에서 일할 때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한국소설 번역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이질적인 두 언어를 주물러 비슷한 감흥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게 즐겁다. 남성적인 언어는 남성적인 언어로, 시적인 언어는 시적인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 내게는 하나의 창작이다. 작업 끝낸 작품을 대할 때면 아기를 여럿 낳은 어머니 같은 느낌이 든다.”

신준봉 기자, LA 중앙일보 유이나 기자

『엄마를 부탁해』 어떻게 번역됐나

- 2009년 5월 『엄마를 부탁해』의 해외 판권 에이전트, 김지영씨에게 40여 쪽 샘플 번역 의뢰

- 8월 샘플 번역 완성

- 9월 크노프 출판사 출판 결심

- 2010년 2월 김씨, 번역 완료

- 10월까지 작가 신경숙씨, 번역자 김지영씨, 크노프 출판사 담당 편집자 로빈 데서 등이 연락 주고 받으며 교정 작업

- 크노프 출판사, 소수의 독자들에게 가제본판 배포. 독자 반응을 토대로 초판 10만 부

찍기로 결정

- 2011년 4월 5일. 미국 서점가 판매 시작


『엄마를…』 돌풍 또 다른 비결

① 엄마는 보편적인 주제 ② 한국이라는 낯선 문화로의 여행 ③ 아시아 문학에 관심 커진 흐름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고, 이색적인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어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외국소설에 대해 문턱 높기로 소문난 미국 시장을 뚫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작가 에이브러햄 버기스(Abraham Verghese)는 “많은 사람에게 낯선 문화로의 여행이면서 보편적인 호소력을 가진 작품”으로 평가했다. 그는 “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 한참 후에도 여운이 남는 굉장한(terrific) 소설”이라고 덧붙였다. 허비안 로즈라는 이름의 독자는 “(소설 속) 한국 농촌 풍경이나 문화를 사랑하지만 정작 책을 읽고 났을 때 드는 생각은 어떤 나라든 가족들은 다르기보다는 엇비슷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소설이 한국적이면서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작가 제이미 포드는 “어떤 책은 우리를 바꾼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보는 방식, 우리가 가까운 사람들과 교감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신경숙의 책이 그런 책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 책은 하나의 문이다. 그 문턱을 넘어가면 당신은 처음 출발했던 그 편안한 자리로 결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썼다. 가까운 이들을 사랑하는 방식, 그리워하거나 기리는 방식 등을 돌이켜 보며 후회하게 돼 결코 마음 편치 않아진다는 뜻이다.

 ‘PT Cruiser’라는 이름의 독자는 “너무 많은 신문기사(spoilers)를 보려 하지 말라”며 “두 손가락을 들어(Two thumbs up)” 책을 추천했다.

 민음사 장은수 대표는 “한국 소설에 대한 미국 독자들의 이 같은 반응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일주일 정도 더 지켜봐야겠지만 다른 한국 작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또 “미국 독서 시장에서 1970년대 남미문학이, 90년대 아프리카나 유럽의 변방 작품이 주목을 받은 데 이어 2000년대는 아시아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데, 신씨의 돌풍은 그런 흐름과도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풀이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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