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그머니’ 값올려 출시된 1백40만원대 인터넷 PCⅡ

중앙일보

입력

정부의 인터넷PC 공급 정책이 2차 스팩 조정으로 이어지면서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성능 강화를 위해 몇 가지 조정이 있긴 했지만, 가격은 1백만원 이하였던 1차에 비해 무려 50만원이 비싸진 1백50만원 이하에 공급되기 때문이다. 정보화 시대에서 소외된 일반 서민들을 위해 시행하겠다던 인터넷PC 사업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스팩 조정 계기로 업계 마진 보장에 신경쓴 듯

인터넷PC(국민PC)가 지난 12월 20일부터 펜티엄Ⅲ 5백㎒ CPU를 장착, 더욱 강력한 성능으로 소비자들에게 선보였다.

인텔 셀러론 4백33㎒ 일색이던 첫 번째 모델에 대해 성능이 떨어진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확산되자 정부는 인터넷PC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관련업계와 협의를 진행, 새로운 성능 및 가격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

정보통신부의 2차 가이드 라인은 CPU에 펜티엄Ⅲ 5백㎒ 이상, VGA(비디오 그래픽 가속 보드) 메모리 16MB 이상, HDD(하드 디스크 드라이브) 10GB 이상으로 그래픽 구현 성능을 크게 강화한 점이 주목된다.

하지만 가격적인 측면에서는 종전에 비해 50% 인상된 결과라는 점에서 인터넷PC 사용 희망자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이같은 스팩 조정은 당초 농·어촌 등 정보화에서 소외된 계층을 대상으로 공급하려던 인터넷PC 사업이 실제 상황에서는 상당 부분 빗나가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소외 지역 사용자들보다는 기존 PC 사용자들에게 업그레이드 형태로 판매가 이뤄질 가능성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스팩 조정을 통해 발생한 가격 상승은 1백만원 이하에 고성능 PC를 모든 국민에게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인터넷PC 사업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는 실정이다.

2차 스팩은 1차 스팩에 비해 CPU 속도와 VGA 메모리·HDD 용량 등 몇 가지 주요 부품에 대한 성능 향상이 이뤄진 것은 사실이지만, 가격면에서는 최소 40여만원이 비싸졌다.

정부의 가격 가이드 라인은 이같은 스팩에 17인치 모니터를 채용했을 때 1백50만원을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1차 가격 가이드 라인이 1백만원 이하였다는 점과 비교해 볼 때 모니터 크기 확대와 몇 가지 성능 향상이 이뤄진 반면 가격은 50만원이 상승한 셈이다.

더욱이 이번 2차 스팩 결정 과정에선 11개 업체가 가격 담합을 하지 않았느냐는 의혹마저 일고 있는 실정이다.

업체에 따라 스팩 구성이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15인치 모니터를 채용할 경우 1백37만원, 17인치를 채용하면 1백49만원으로 11개 업체의 가격이 모두 같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공급업체들은 PC의 라이프 사이클이 3개월마다 한 번씩 변화되고 있어 인터넷PC도 업그레이드가 불가피하고, 그에 따른 가격 상승은 어쩔 수 없다고 밝힌다. 특히 1차 스팩 구성시 마진율이 극히 낮아 사업에 큰 차질을 빚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PC 공급 사업이 대다수 국민에게 PC를 저가(低價)에 공급하겠다는 취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1백50만원에 가까운 가격은 당초 취지를 사실상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농·어촌 등 소외 지역 거주자의 입장에서 보면 90만원대와 1백40만원대라는 가격 차이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PC가 또 다시 도시 중심의 정보 편중화 현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많다는 우려는 이런 이유에서 타당성을 갖는다.

중산층으로 이뤄진 도시의 PC 사용자들은 인터넷PC Ⅱ 등장으로 싼 값에 고성능 컴퓨터를 사용하게 된 반면 정보화 소외 지역 서민들은 이번 가격 상승으로 PC를 여전히 ‘그림의 떡’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게 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정보통신부는 1차 스팩 및 가격 가이드 라인 제시 때 발생했던 업계의 반발을 2차에선 상당 부분 수용, 마진 폭을 보장했다는 비판을 자초한 셈이 됐다.

이같은 사실은 인터넷PC 공급업체 관계자들의 속내 이야기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1차 스팩 구성시 대당 5만∼6만원에 불과했던 마진이 2차에서는 최고 사양을 구성하고도 10만원 이상의 마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제조업체의 거품을 최대한 빼고 가장 대중적인 가격에 고성능 컴퓨터를 공급하는 게 인터넷PC 사업이라면 PC 라이프 사이클 변화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가격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소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1백만원 안팎의 가격을 유지하면서도 그 시점의 시장 주력 제품 성능에 크게 뒤지지 않는 제품을 공급해야 한다는 소비자의 요구를 정통부는 귀담아들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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