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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2000' 준비 백남준씨 특별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밤은 새 날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두 밀레니엄이 교차하는 1999년의 마지막 밤, 국토의 허리를 가르고 잇는 휴전선은 통일의 새 세상을 기원하는 하이테크 멀티미디어 퍼포먼스로 분단의 어두운 상처를 달래게 된다.

이날 해질 무렵부터 새 천년의 새벽까지 임진각에서는 'DMZ2000'이란 새 천년 통일 기원제가 열린다.

진도 씻김굿이 묵은 세월의 한을 쓸어내리고, 지난 천년 서로 등지고 살았던 동서문명이 한 자리에서 만나 온갖 공연을 통해 하나로 어우러진다. 중앙일보의 후원으로 21세기 예술경영연구소.경기도.MBC가 주최하는 행사다.

이 행사는 한반도의 분단과 동서문명의 반목이 종식하기를 기원하는 '호랑이는 살아 있다'는 제목이 비디오 아트 작품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비디오 아트의 미켈란젤로'로 불리는 백남준씨가 빚어내는 작품이다.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현대 미술에 굵직한 획을 그은 백씨는 'DMZ2000'행사의 예술 총감독까지 맡아 통일의 새 천년을 향한 염원을 반세기 동안 끊어진 다리 앞에서 펼치게 된다.

전세계 예술인의 집성촌으로 불리는 뉴욕 맨해튼 소호거리의 스튜디오에서 백씨를 만났다.

-이번에 선뵐 '호랑이는 살아 있다'를 비롯한 기원제의 기획의도는.

"무엇보다 통일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자연스럽게 인식토록 하자는 것이다. '호랑이는 살아 있다'는 82년부터 시작된 내 비디오 아트의 총 정리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40분짜리 비디오 아트 작품 중 14분을 추려 한국의 MBC와 영국의 BBC, 미국의 ABC 등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 방영하게 된다."

-이 기획을 맡게 된 소감은.

"나이 예순일곱에 이런 좋은 기회가 주어져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예술을 통해 우리의 염원인 통일을 기원하는 것 자체가 너무 뿌듯하다. 전세계를 향해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띄울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본다. 통일을 위한 초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해의 활동계획은.

"내년 2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벌이는 새 천년 맞이 초대형 이벤트에 초청받았다. 82년 휘트니 뮤지엄에서의 대형 전시회에 이어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뉴욕의 구겐하임에서 또 다시 대형 전시회를 갖는다는 것은 예술가로서 가슴 뭉클한 일이다. 죽기 전에 굵직한 데모(백씨는 자신의 작품전시회를 간혹 데모로 표현한다)를 한번 더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에 감사할 뿐이다."

-최근 비디오 아트에 이어 새로운 예술장르를 개발하고 있다는데.

"레이저 아트라는 분야다. 90년대에도 레이저를 간간이 등장시켰지만 21세기에는 작품 속에서 레이저 빔을 쏘면서 현실감을 더욱 배가시킬 계획이다.

레이저 아트를 활용한 첫 작품전이 구겐하임 전시회다. 나선형으로 독특하게 생긴 구겐하임 미술관의 건축미를 최대로 살린 생생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레이저 빔은 아래에서 위로 쏘는 것이 관례이니 구겐하임전에서는 6층 천장에서 1층 바닥으로 폭포처럼 쏘는 것이 관례이나 구겐하임전에서는 6층 천장에서 1층 바닥으로 폭포처럼 쏘고 반대로 1백여개의 화면이 설치된 바닥에서도 레이저가 달팽이처럼 생긴 미술관 벽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다.

공간의 개념을 최대로 살리는 예술로 보면 된다."

-영감은 주로 어떻게 얻나.

"초등학교 이후 50여년 만에 최근 크레용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주로 동물을 그린다. 메가바이트를 상징하는 코끼리나 기린.말.물고기 등이 소재다.

그림의 형상은 신이 만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화론에 입각한 형태도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희한한 형태의 동물 모습을 크레용으로 그려 손이 닿는 곳마다 붙여놓으면 지나칠 때마다 스쳐가는 듯한 아이디어(소재)를 얻게 된다."

-새 천년 미술계의 향방을 짚어 본다면.

"새 천년은 하이테크가 가미된 미술이 전성기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미개척 분야이므로 새로운 분야가 끊임없이 개척될 것이다. 앞으로 많은 실험적 예술들이 생성됐다 소멸될 것이다.

실험적 예술들이 계속 창조될 때 미술게의 발전속도는 두배, 세배가 될 것이다."

-최근 건강은 어떤가.

"96년 4월 뇌졸증으로 쓰러진 이후 거동이 부자유스럽지만 최근 많이 좋아졌다. 아내(구보타 시게코)와 함께 지팡이를 짚고 오후에 소호 일대를 1백m가량 산책할 수 있을 정도다. 지난 9월에 백내장 수술을 받아 시력도 상당히 회복됐다. 작품활동에 전혀 문제가 없다. 엊그제도 구겐하임 미술관 실무자와 마주앉아 작품전 캐털로그에 대해 한시간 이상 토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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