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영화 주제가 록으로 환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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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은하철도 999-" "아빠가 출근할땐 뽀뽀뽀/엄마가 안아줘도 뽀뽀뽀/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뽀/헤어질땐 또만나요 뽀뽀뽀…"

언제 들어도 정겨운 추억의 만화영화 주제가들이 언더 밴드들의 거칠고 신나는 메탈 사운드로 새롭게 채색됐다.허벅지.에브리 싱글 데이.아무 밴드.펄럭 펄럭 등 실력파 언더 밴드 15팀이 캔디.은하철도 999.개구리 왕눈이.뽀뽀뽀 등 만화영화.어린이 프로 주제가.동요를 한곡씩 리메이크한 음반 '로커딕' 이 그것.

지난 15일 출시된 이 음반은 현재 5천장이 판매돼 인디(독립)음반중에서는 드문 인기를 누리고있다.PC통신에는 매일 수백건씩 화제가 올라오고 있고 방송에서도 어린이 프로에 곡 삽입을 고려할 정도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만화영화 주제가 음반이면서도 주 구매층이 20대후반~30대 초반 성인들이란 점. 이들이 10~20년전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만화영화들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다.10대들이 가요문화를 주도하는 가운데 소외감을 느껴 온 성인들이 오랜만에 즐겁게 맛볼 수 있는 '종합 선물세트' 인 셈이다.'로커딕' 은 성인들에게 향수를 되살려 주면서 요즘 록의 경향도 알려 줘 한번 들어볼 만하다.

모든 수록곡이 연주자들의 장르와 개성에 따라 새 옷을 입었다. '은하철도 999' (우두마두)는 빠르게 질주하는 테크노 비트위에 기적소리처럼 삑삑대는 효과음을 얹어 마치 고속열차에 올라탄 듯 신이 난다.메탈밴드 시나위의 새 보컬 현건의 노래가 멋진 '캔디' (데미지 INC)는 원곡과 느낌이 1백80도 다른 하드코어 곡이지만 "외로워도 슬퍼도…" 부분에 스민 슬픔의 농도는 원곡 이상이다.테크노록으로 변신한 '로버트 태권V' (토이박스)역시 목 쉰듯한 보컬이 진한 향수를 안겨준다.'뽀뽀뽀' (펄럭펄럭)는 아기자기한 편곡과 넘치는 에너지 덕에 음반 타이틀곡이 됐다.

압권은 다섯번째로 수록된 '개구리 왕눈이' .블랙 메탈(메탈중에서도 특히 무겁고 슬픈 음악)밴드 새드 레전드가 연주한 이 곡은 섬광같은 기타연주에 장중한 오페라풍 하모니가 대작의 분위기를 연출한다.음반 후반부에는 '우산' '오빠 생각' ' 텔레비전' 같은 동요가 또다른 향수를 자극한다.'우산' (아무 밴드)은 본격 사이키델릭풍 연주가, '오빠 생각' (허벅지)은 구슬프고도 아름다운 사운드가 이채롭다.또 '텔레비전' (미스터 소울)은 어둡고 느리며 권태로운 보컬이 방송에 대한 언더 밴드의 조소를 보여준다.

'로커딕' 은 몇년전 일본의 인기밴드 '앤섬' 의 보컬 사카모토 에이조가 만화주제가들을 메탈로 재가공해 발표한 '애니 메탈' 음반과 아이디어가 흡사하다.그러나 곡의 느낌과 연주, 편곡은 99년 한국 언더 음악계의 역량을 집약하고 있는 개성적인 작품이다.대중음악 평론가 송기철씨는 "들을수록 유쾌한 재미를 선사하는 음반이다.연주도 전혀 장난스럽지 않고 탄탄하다.
" 고 평했다.

'로커딕' 참여 밴드들은 음반의 인기에 힘입어 내년 1월21.22일 서울 두산타워앞 광장에서 공연을 펼친다.
02-326-1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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