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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새해엔 제발 企業하기 좋은 환경을…

중앙일보

입력

지난 2년간 IMF와 일부 선진국의 지도(?)
아래 진행된 구조조정은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문화·사회적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2년 전 단기외채 상환 실패에 따라 발생한 외환위기 때문에 '원화의 가치하락→금융기관과 대형 외자도입 업체의 재무구조 악화→대출경색과 거래축소→연쇄도산→실업자 증대→내수시장 위축→매출부진→연쇄도산·실업자 증대·대출경색…'의 악순환 속에서 자연스레 발생한 측면도 있으나, 정책 대응이 이런 악순환 구도를 확산하거나 왜곡시킨 측면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러한 위기과정에서 채택된 일련의 정책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외환위기라는 급성 질환에 대한 응급수술과 함께 10년 이상 된 고비용·저효율 구조라는 만성적 질환을 빠른 시일 안에 고쳐보겠다고 4대 부문(금융·재벌·공공·노동)
의 개혁을 시작했다. 그런데 만성 질환을 수술로 처리하다 보니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수술 집도 의사집단이 외국 금융자본가·국내 재야세력 출신자·제도학파와 질서 자유주의론자·오래된 관료 제일주의자들로 짜여져 있었기 때문에 기존 체제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교정하는 행태 교정방식보다는 기존 산업경제조직의 해체라는 과격한 방식에 의존하게 됐으며, 해체작업의 주도권을 미리 정해진 제도나 원칙에 의존해 시장에서 행사하게 만들지 않고 정치적으로 행사한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고비용·저효율 구조의 타파라는 효과가 나타나기보다는 계속 예외 인정과 편법 동원, 단기 인기주의적 교정행태가 이어지게 되었다.

반면 국내 금융기관과 대기업은 과거 제도와 관행상 생긴 문제점이 최대한 극대화됨으로써 경영능력과 도덕성 측면에서 비하되며 국내외에서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마땅한 존재인 것처럼 만들어 신용을 잃게 했다.

둘째,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역사적인 구조조정 사업을 마치 '도랑치고 가재잡는' 수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재를 잡기 위해 도랑치는 행동’마저 보인다는 비난이 있을 정도다. 자의성이 많이 개입되는, 성급하고 엄청난 구조조정일수록 그 대상에서 벗어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새로운 줄잡기 경쟁을 벌이게 돼 있다. 그래서 성스러워야 할 구조조정 작업에 기업계와 금융계의 세력 재편성이니 정치자금줄 재조정 작업이니 하는 '별명'이 붙게 된 것이다.

셋째, 특히 금융산업계의 대폭 정돈과 재벌들의 사실상 해체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국내기업을 역차별한다는 비난을 들어가면서 단기간에 많은 외국자본을 불러들였다. 뿐만 아니라 국내시장을 외국 산업자본가들이 빨리 잡을 수 있도록 재벌들 소유의 기업매각을 조건은 불문하고 추진할 수밖에 없도록 부채비율 2백%나 업종전문화를 강요했다. 그 결과 국내산업계는 멍들어도 국내기업과 금융계가 다급해질수록 외국컨설팅회사·금융기관·국내산업 인수자들은 특혜를 받으니 한국개혁에 대한 그들의 칭찬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과거 사회주의국가들이 체제전환할 때 소련의 고르바초프나 러시아의 옐친은 크게 칭찬을 받았었지만 중국의 등소평은 서방세계에 별로 인기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넷째, 기존 체제를 빨리 허물수록 빨리 회복되는 것을 보여 줘야 하기 때문에 고비용·저효율 구조 시정조치가 개별경제 주체들의 내구력 증진과 행태변화를 일으키는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외국자본 유입 촉진을 위한 경제개방의 본격화(자본자유화나 내수시장개방 등)
와 함께 통화증발과 재정적자 확대, 그리고 국내 소비촉진과 같은, 미래에 부담이 될 정책수단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뭔가 빨리 보여 주기'는 전통적으로 관료중심 주의자들의 장기(長技)
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들이 땜질식으로 처리한 각종 시책이 후일 국가적 위기를 불러 왔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새해부터는 한시라도 빨리 고비용·저효율 구조의 시정(是正)
이라는 관점에서 공공부문·노동시장·자본시장의 개혁을 통해, 또 구조조정을 투명한 원칙하에 시장주도로 이뤄지도록 사심없는 추진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선진국 수준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 이전보다 국제경쟁력만 떨어진 상태에서 재정 부실·공동체 의식저하 내지 심각한 사회분열·대외의존도 상승과 교역조건 악화라는 미래 부담만 증대시킨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 사장
주간 이코노미스트(economist.joongang.co.kr)
제 518호 2000.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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