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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심리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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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무엇인가? 그 답은 일반 시민에게 묻느냐, 전문가에게 묻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미국 오리건 대학 심리학과의 폴 슬로빅 교수가 1987년 사이언스지에 게재한 논문 ‘위험 인식(Perception of Risk)’을 보자.

 우선 통계. 그는 여러 집단의 사람들에게 “어떤 기술이나 행위가 가장 위험한가?”를 물은 결과를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여성유권자연맹 회원들이 가장 위험하게 본 것은 원자력이었다(그 다음은 ② 자동차 ③ 권총 ④ 흡연 ⑤ 오토바이 ⑥ 술 ⑦ 항공 여행… 순이었다). 대학생들의 응답 역시 원자력이 1위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본 원자력의 위험성은 20위에 불과했다(1위는 자동차였다).

 이 같은 괴리에 대해 슬로빅은 “위험의 개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전문가들이 위험을 평가하는 주된 기준은 연간 사망자 수다. 그래서 “원자력발전소 옆에 1년간 사는 데 따른 위험은 자동차를 불과 5㎞ 더 운전하는 것과 같은 수준”이라는 식의 계몽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슬로빅에 따르면 일반인이 체감하는 위험의 크기는 사망률보다는 ①끔찍한(dread) 결과 ② 미지의(unknown) 정도 ③ 위험에 노출된 사람 수에 비례한다. 여기서 ① ‘끔찍한’이란 통제불능이고 끔찍하며 파국적이고 치명적이라는 의미며 ② ‘미지’란 눈에 보이지 않고 미지이며 전에 없던 것으로서 두고두고 해를 끼칠 수 있다는 뜻이다.

 대중의 입장에서 원자력은 미지의 파국적인 위험을 대표한다. 따라서 그 편익은 매우 작고, 사고로 인한 피해는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으로 인식한다. 슬로빅은 “대중의 걱정은 정당한 것이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빠뜨리고 위험을 평가한다”며 “그 결과, 위험 커뮤니케이션과 위험 관리 노력은 쌍방향으로 이뤄지지 않는 한 실패하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대중과 전문가는 서로 기여할 몫이 있으며 각기 상대 측의 통찰력과 지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2006년 미국 과학진흥협회 회장 길버트 오멘은 연례회의 연설에서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문제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 답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국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과 일본발 방사능 물질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커지고 있다. 하지만 당국을 포함한 전문가 집단은 귀를 기울이기보다 해명과 설득에만 열을 올리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 시민을,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탓은 아닐까.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