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배우는 예·체능 활동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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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예·체능 활동을 영어로 배우는 프로그램이 유행하고 있다. 축구·태권도부터 시작해서 피아노·미술까지 분야도 다양하다. 예·체능을 좋아하는 아이는 영어에도 금방 흥미를 갖는다. 부모가 조금만 신경 쓰면 가정에서도 쉽게 해볼 수 있다.

영어로 외치며 태권도 수련

 23일 오후 5시 서울 성산동 홈플러스 평생교육아카데미. 10여 명의 아이들이 태권도복을 입고 힘차게 구령을 외치고 있다. 그런데 모두 영어다. “What’s your favorite kicking(제일 좋아하는 발차기가 뭐야)?”“My favorite kicking is the front kick(저는 앞차기를 가장 좋아합니다).” 박민재 강사가 “Let’s start(한번 해봐)”라고 말하자 이현기(5)군이 구령과 함께 힘차게 발차기를 했다.

 원래 현기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모두 함께 구령을 붙일 때도 혼자 작은 소리로 성의 없이 했다. 하지만 몇 달 만에 변했다. 두 살 위의 형들에게 먼저 장난도 치고, 발차기도 제일 세게 찬다.

 박 강사는 “태권도를 배우면서 구령을 외치면 자신감을 키우는데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영어 실력도 자연스럽게 향상된다. 영어 단어나 문장을 큰 소리로 반복 학습하면 저절로 암기가 되고, 외국어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진다. 현기 어머니 김민경(35·여·서울시 현석동)씨는 “내성적인 면이 있어 걱정했는데, 태권도영어를 배우고 난 뒤에는 영어가 늘고 자신감도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영어와 태권도를 한꺼번에 배울 수 있는 태권도영어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한 프랜차이즈 업체의 경우만 해도 전국에 20곳이 넘는 가맹점을 두고 있다. 또 유치원과 문화센터, 초등학교 등 80곳 이상에서 태권도영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김성훈 태글리쉬 대표는 “영어 자체에 두려움이 있는 아이들도 운동하면서 재밌게 배울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미술·음악으로 창의력도 쑥쑥

 태권도뿐 아니라 음악·미술 활동에 영어를 접목한 프로그램들도 인기다. 박은희(38·여·경기도 용인시 신봉동)씨는 “피아노영어 덕분에 큰 딸 주영이(신일초4)가 영어에 흥미를 가져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주영이는 교내 영어노래대회에서 금상을 받고, 교내 영어스피치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 학교 대표로 용인시 영어스피치대회에도 출전했다. 피아노영어로 영어 사용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박씨는 “특히 음악을 들은 뒤 영어로 느낌을 말하는 시간을 통해 표현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을 들은 뒤 “I was scared(나는 무서웠어요)”라고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식이다.

 여지은(31·여·서울 청담동)씨는 딸 한가윤(3)양과 함께 집에서 그림 그리기를 할 때마다 놀란다. 가윤이가 중간 중간 영어 표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물감을 흔들어서 짤 때 “Shake it(흔들다)”이라고 말하고, 물감을 열때 “Open it(열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영어미술 덕분이다.

 여씨는 “영어유치원에 다니다가 영어에 질리는 아이를 종종 봤는데, 영어미술은 아이가 즐기면서 배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영어미술의 경우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오감을 통해 배우기 때문에 아이들이 따라하고 기억하기 쉽다.

가정에서 활용하면 친밀감 상승

 예체능 활용 영어교육의 인기는 영어교육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삼성교육 아토리 김미경 차장은 “10~20년 전까지는 초등학교 때도 영어교육을 안 시켰는데, 최근에는 4~5세부터 영어조기교육이 필수가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어린 아이들이 영어 문법과 어휘를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데 있다. 억지로 시키다 보면 본격적으로 영어를 배울 때 책도 보기 싫어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예체능을 활용한 영어교육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예체능을 배우는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되므로 거부감이 없고 습득도 빠르다.

 하지만 예체능을 배우는 수단으로서의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 영어를 배우기 위한 예체능 활동으로 변질되면 조기교육의 폐단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어떤 활동이든 선택하기 전에 아이의 수준과 욕구를 충분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경성대학교 유아교육과 이연승 교수는 “자칫 예체능에 대한 흥미마저 잃을 수 있으므로 활동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정에서 활용해 흥미를 이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음계를 익힐 때 코드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함께 찾아보고,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에 생활영어 가사를 붙여주는 식이다. 유아 때부터 이런 활동을 하면 아이와 부모의 친밀감도 높아지고, 영어에 대한 거부감도 없애기 쉽다.

※도움말=태글리쉬 김성훈 대표, 박민재 강사 / MYC코리아 윤혜원 대표 / 삼성교육 아토리 김미경 차장, 청담점 최정우 원장


[사진설명] 박민재 강사(왼쪽)와 아이들이 영어로 ‘one(하나), two(둘), three(셋)’ 구령을 외치며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전민희 기자 skymini1710@joongang.co.k 사진="최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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