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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한 자는 말로 남을 해치고 지혜로운 자는 사랑을 얻는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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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호 31면

“신학교를 가겠습니다.” “안 된다!”
대학교 진학을 앞둔 어느 날 저녁 나는 아버지께 사제가 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아버지는 한마디로 내 말을 자르셨다. 아버지는 평소에는 자상하셨지만 한번 결정을 하시면 절대 바꾸는 법이 없으셨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부엌으로 들어가 물 한 잔을 마셨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머니가 들어오셔서 나지막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렴. 너의 인생은 네가 선택하렴.” 그날 밤 어머니의 이 한마디는 내 인생의 행로를 바꾸어 놓았다.

삶과 믿음

평생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한 적이 거의 없으셨던 어머니가 이상하게도 그날은 전혀 다르셨다. 얼마 후 나는 아버지 몰래 신학교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쳤다. 물론 오랫동안 아버지와 나는 서먹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몇 년 후 세상을 떠나시기 전 아버지는 나에게 반대하신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 “사제의 길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해서 너를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네가 어렵게 선택했으니 좋은 신부님이 되어 주려무나.” 30여 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가끔 그날 밤을 생각한다. 만약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어머니의 말씀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말은 발설하는 순간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여기에도 적용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발설된 말은 시간이 지나도 소멸되지 않고 보존되는 것 같다. 그래서 말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가. ‘좋은 옷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좋은 말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는 중국 속담처럼 격려나 위로 또는 칭찬하는 말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반대로 저주나 악담·험담은 사람의 마음을 증오로 불타오르게 하여 앙심을 품고 앙갚음을 하도록 유인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로써 다른 이를 해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말로써 유익함을 얻고 사랑과 칭송을 받는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말을 통해서 다른 이에게 고통을 준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자제력을 지니고 말 한마디에도 심사숙고한다. 말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하고 큰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종종 말 한마디의 실수로 자리를 물러나는 정치 지도자들을 보게 된다. 특별히 지도자의 말에는 큰 책임이 뒤따른다. 그러나 말에 대한 책임이 어디 정치하는 사람에게만 국한되겠는가.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를 기울이고 내 슬기에 귀를 기울여라. 그러면 네가 현명함을 간직하고 네 입술이 지식을 보존하리라’(잠언 5장 1∼2절)라는 성서 말씀이 있다. 누구를 막론하고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는 잣대가 된다. 우리가 가정이나 직장, 혹은 친구를 만날 때도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되는 것이 바로 한마디 말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한다. 이 말은 반대로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질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닐까. 말 한마디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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