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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차이나 신드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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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79년 미국 영화 ‘차이나 신드롬(China Syndrome)’은 원자력발전소의 갑작스러운 기능 이상을 한사코 은폐하려는 정부 당국과 진실을 파헤치려는 여기자 제인 폰다의 갈등을 그렸다. 그런데 원자력과 중국이 무슨 관계이기에 제목이 ‘차이나 신드롬’일까.

 60년대 후반, 원자력발전소가 처음 등장한 이후 안전성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고 제기됐다. 당시에도 논란의 핵심은 원자로에 문제가 생겼을 때 비상 냉각 시스템이 노심 용융(melt down)을 막아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미국 핵물리학자 랠프 랩(Ralph Lapp)은 71년, 미국에서 원자로의 노심이 녹아 내리면 방사성물질이 지표면을 관통해 반대편에 있는 중국까지 오염시킬 것이라는 가설을 발표했다. 물론 지리학적으로 미국의 대척점은 중국이 아니라 인도지만 ‘차이나 신드롬’이란 조어는 이 가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후 후배 물리학자들은 랩의 주장이 근거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떤 경우에도 방사성물질이 지구를 뚫는 상황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번 뇌리에 박힌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영화 ‘차이나 신드롬’이 개봉되고 2주 뒤에는 미국 스리마일 섬의 원자로에서 기기 고장으로 방사능이 유출되는 사고까지 터졌다. 일반인들의 핵 공포는 극에 달했고, 미국의 원자력 정책 기조가 흔들렸다.

 민감한 문제에 대한 대중의 불안감은 정보가 개방된 국가일수록 더욱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활성화된 SNS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의 유통에도 최적의 환경이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암으로 사망했다는 일본의 반핵운동가 히라이 노리오(平井憲夫)의 글이 국내 네티즌 사이에서 널리 퍼진 게 좋은 예다. 10여 년 전 일본에서 처음 발표됐을 때 이미 ‘사실과 다르다’며 논박당한 글이지만, 대중의 불안감은 언제고 이런 주장들을 다시 살려낼 수 있다.

 지은 지 30년이 넘은 국내 원자로들은 안전한가. 도무지 실체를 알 수 없는 북한 원자로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을까. 4월에 일시적으로 분다는 동풍은 후쿠시마의 방사성물질을 한반도로 싣고 오는 게 아닐까. 국민은 불안하다.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겠지만 별 설명 없이 ‘원자력은 싸고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시기는 한참 지난 듯하다.

송원섭 JES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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