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총장 감금에 서울대 법인화 흔들려선 안 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서울대 법인화를 둘러싼 학교 구성원 간 갈등과 진통이 극단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급기야 오연천 총장이 법인화 추진 과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교직원과 학생들에 의해 감금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서울대 노조 소속 교직원과 총학생회 학생 등 300여 명이 그제 오후부터 어제 새벽까지 총장실 앞 복도를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인 것이다. 오 총장이 장염으로 하혈을 하는 등 몸 상태가 안 좋았음에도 새벽 4시까지 갇혀 있어야 했다니 이런 무도한 행패가 없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그것도 한국 대학을 대표한다는 서울대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연구와 교육이 행해지는 신성한 대학 공간이 불법과 폭력으로 얼룩진 현실이 개탄스럽다.

 노조 측이 이번에 요구한 건 ‘법인 설립준비위원회’에 노조 추천 인사를 포함시키거나, 이사 선임 권한을 달라는 것이다. 설립준비위나 이사회를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억지요, 월권(越權)이다. 법인화가 될 경우 신분보장이 약해질 것을 우려해 법인화를 반대해 온 그간 행태의 연장일 뿐이다. 학생들이 급격한 등록금 인상을 걱정해 법인화 반대에 나서는 것도 보기 안타깝다. 법인화 이후에도 정부 예산 지원이 계속돼 등록금이 갑자기 오르는 일은 없을 거라는 대학 측 설명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통과된 서울대 법인화법은 법인화 논의를 시작한 지 23년 만에 어렵게 결실을 본 것이다.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서 이제 독자적인 대학 개혁을 추구할 수 있는 법인화를 더 미룰 수는 없다. 교수·직원·학생 등 학내 구성원들이 법인화 안착을 위해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판에 갈등과 대립으로 계속 삐걱거려서는 안 된다. 대학 측이 먼저 법인화 원칙에 흔들림이 없도록 하되 학내 여론 수렴을 위한 구성원과의 대화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노조와 학생들도 대학 발전이란 대승적 견지에서 법인화 추진에 협력하고 힘을 보태야 옳다. 그게 이번에 저지른 ‘총장 감금’이라는 용인(容忍)될 수 없는 잘못을 뉘우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