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높은 도쿄전력에 ‘버럭 수상’…원전 어떻게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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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가 통제불능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일본 정부와 기업의 부실한 위기대응능력이 가감없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대응능력이 사태 악화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도쿄전력은 국제사회의 지원에 손사래를 치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프랑스에 도와달라며 '백기를 들고 울며 매달렸다(스포츠호치)'. 국제사회의 지원을 거부하면서 도쿄전력이 택한 방식은 인부를 방사능 지대에 마구잡이 투입하는 '가미가제'식 대처법이었다. 그래서 '원자력 마피아'라는 말까지 나왔다.

일본 정부는 이런 도쿄전력의 대처법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TV에 원전사태가 나오는데 나는 보고도 못받았다"며 호통을 치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서 원전사태가 이렇게 심각한 상황까지 오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도쿄전력의 오만함과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일본 정부의 무능이 맞물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일본 언론 뿐 아니라 외국의 다른 언론들도 내놓고 있다.

원전 사태가 발생한 뒤 도쿄전력의 콧대높은 행보는 일본을 넘어 이젠 국제사회에서 비난의 표적이 됐다. 전세계를 방사능공포에 떨게 한 장본인으로 서슴없이 지적할 정도다.
사고 초기 미국정부는 원전 냉각수 시스템 복구를 위한 기술적 지원을 도쿄전력에 제안했지만 거부당했다. 당시 언론에 따르면 미국이 ‘원전 완전 폐기’를 전제로 수습방안을 내놨는데 이 경우 원전을 새로 건립해야 하는 비용 약 5조엔이 들어가 민간투자사인 도교전력이 거절했다. 결국 비용을 아끼려고 ‘NO’를 택한 것이다.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을 때도 도쿄전력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원전 작업용 무인로봇을 포함한 특수장비 지원을 제의했지만 이 역시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프랑스 원전업체 ‘아레사’측은 “도쿄전력이 전문가는 받아들이겠지만 무인로봇은 거절했다”며 “사용해보지도 않고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신 하루 1당 540만원짜리 인부를 투입해 원전을 제어하려 했다. 하지만 방사능에 오염된 물에 인부가 발을 담그는데도 아무 제지도 하지 않을 정도로 이들은 '사지(死地)'로 내몰렸다. 원시적인 인간방패를 내세우는 전형적인 '원전 가미가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무인로봇을 미리 들여와 원전 복구 작업을 했다면 사람이 사지로 내몰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쏘아붙이고 있다.

간 총리 내각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도쿄전력을 컨트롤하기는 커녕 책임회피에 급급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사고 발생 초기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에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간 총리는 고함만 지른다고 해서 ‘버럭총리’라는 닉네임까지 달았다. 일본 내에서는 '사실상 도쿄전력에 일본 정부가 놀아났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제사회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힐러리 미국 국무장관은 "일본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외국 언론들은 '무능한 일본 정부를 제치고 해결사로 프랑스와 미국이 나섰다'는 비아냥을 서슴없이 했다.

일본 자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일본 정부는 31일 각 국의 도움을 모두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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