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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장진 … 웃기는 데 도사, 울리는 데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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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장진 식 유머’와 ‘장진 사단’. 1998년 영화 ‘기막힌 사내들’로 데뷔한 후 이제껏 장진(40) 감독과 짝을 이뤄온 단어다. 왠지 합(合)이 맞아떨어지지 않는 듯한데도 알싸한 기운을 남기는 웃음, 낯익은 배우를 낯선 상황에 던져놓는 데서 나오는 재발견의 놀라움…. 호오(好惡)가 엇갈릴 때도 많았지만, 분명한 건 그는 한국영화의 재기를 가늠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이름이라는 점이다. ‘굿모닝 프레지던트’ ‘거룩한 계보’ ‘박수칠 때 떠나라’ ‘킬러들의 수다’ 등을 비롯해 제작과 각본을 맡은 ‘웰컴 투 동막골’의 500만 흥행까지, 충무로에서 장진은 늘 재기발랄·엉뚱함·역발상 등과 동의어였다.

24일 개봉한 신작 ‘로맨틱 헤븐’은 그가 40대에 접어들며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코미디보다 멜로에 가깝다고 해야 할 이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다독인다.

천국과 하느(나)님이 등장하는 판타지적 파격이나 곳곳에 지뢰처럼 숨은 소소한 재치도 눈에 띄지 않는 건 아니다. 하나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사랑에 대한, 인생에 대한 따뜻하고 넉넉한 시선이다. 그 뒤엔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의 가치를 헤아리고 그것에 감사하는 한 자연인의 모습도 보인다. 21일 그를 만났다.

글=기선민 기자 ,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결혼식 바로 다음달 ‘로맨틱 헤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체취가 영화에 묻어나는 이유다

시사 때 아내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리고 며칠 뒤 보내온 문자

‘절대로 먼저 죽지마’

팬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다니 … 장진이 달라졌다

그가 독립을 꿈꾼다, 비제도권에서 한바탕 놀아 볼 생각이다

‘로맨틱 헤븐’은 장진 감독이 인간으로서 가장 행복한 시절,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쓴 작품이다. 2007년 열 살 연하 아리따운 아내와 영화 같은 결혼식을 올린 그는, 바로 다음 달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아내의 죽음을 애달파하는 남자, 60년 전 짧은 사랑을 잊지 못하다 결국 해후하는 노년의 남녀, 엄마의 신장 이식을 위해 사라진 기증자를 애타게 찾아다니는 소녀의 이야기였다. 결혼식 다음 달 유서를 쓰는 남자라니. 이 행복이 어느 순간 날아가버리지 않을까 조바심 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체취가 영화에 묻어나는 건 이유가 있었다.

“설거지하던 아내한테 물어봤어요. ‘죽으면 천국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으면 좋겠어?’ ‘제일 행복했던 시절의 모습 그대로’라고 대답하더군요. 거기서 힌트를 얻었어요. 아내한테 ‘이거 내 유서야. 죽으면 다 좋은 데서 만나니까, 괜히 복잡하게 딴 남자 만날 필요 없어’라고 했죠.”(웃음) 시사 때 눈물을 줄줄 흘리던 아내는 남편에게 며칠 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절대로 먼저 죽지 마.”

2008년 겪은 아버지의 죽음도 ‘로맨틱 헤븐’에 독특한 색채를 입혔다. “연말 제 미투데이 블로그(truejangjin)에 ‘올해의 10대 뉴스’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어요. 아버지 돌아가신 걸 두 번째 뉴스로 꼽으면서 이렇게 썼죠. ‘아버지가 토끼랑 절구통 옆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주셨다. 잘 계신가 보다.’ 왠지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싶었어요. ‘아버지 돌아가셨어’가 아니라, ‘아버지 날아가셨어’ 이런 식으로요. 이별을 경험한 모든 사람한테 위로가 됐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아버지가 생각나는 영화”인 ‘로맨틱 헤븐’의 끝 부분, 변호사 민규(김수로)가 아내가 천국에서 찍은 사진을 발견하는 건 아마도 여기서 연유한 듯싶다.

“내가 떠나간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겐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이 될 수 있다”는 발상. 가족영화 ‘아들’을 제외하고는 풍자와 엇박자의 웃음으로 이뤄졌던 ‘장진 스타일’이라고 보긴 힘들다. ‘아내가 남긴 편지 속 지시를 따라 넥타이와 벨트를 고르는 남편’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TV연속극처럼 통속적”이기까지 하다. 이제껏 ‘장진 영화’ 중 눈물바람을 하게 하는 영화도 처음이지 싶다. 특히 하느(나)님(이순재)의 마지막 대사는 여러 번 곱씹게 된다. “(세상을 창조한) 마지막 날 난 사랑을 만들었는데, 인간들이 그것을 용서·자비·뉘우침·기다림·참을성 등으로 만들어내더라”는. 책이라면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 놓고 싶은 구절이다. 변화의 계기는 굳이 묻지 않아도 분명해 보였다.

“결혼으로 달라진 게 분명 있죠. 생전 처음 보험도 들었으니까요. 저희 집 가훈 비슷한 게 ‘우린 팀이다’예요. 팀에서 팀원은 한 명 한 명이 ‘영구 결번’ 같은 존재죠. 밖에서 아무리 상처를 입더라도 집에 돌아오면 ‘우린 다 한 팀이야’ 하면서 보듬어주는 게 가족이잖아요. 아무래도 이런 느낌이 작품 속에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블로그에도 썼다. “다시 한번 가족의 힘을 느낀다. 이 힘으로 지구를 돌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내가 시사를 보고 울더니 재미있고 좋은 영화라고 말해줬다. 나는 이 영화의 결과를 이미 다 얻은 것 같다.”

1998년 ‘기막힌 사내들’부터 13년간 연출한 10편 중 그가 각본을 쓰지 않은 건 ‘박수칠 때 떠나라’ 한 편뿐이다. 반면 강우석 감독의 ‘강철중: 공공의 적 1-1’이나 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 등은 연출을 하지 않고 각본만 썼다. 충무로에서 손꼽히는 글쟁이 장진의 작업 스타일은 어떨까. 그는 밤 10시에 자고 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 아침까지 내리 쓴다고 했다. “좋은 생각이 떠올라도 메모를 남기진 않아요. 그러기 시작하면 삶이 불행해지니까. 사라지는 기억은 사라지게 놔두죠. 블로그에 가끔 끼적이는 게 전부예요. 글을 쓸 땐 늘 90%의 불확실함으로 시작해요. 좋은 대사, 좋은 장면은 찰나에 와요. ‘그분’이 오시는 거죠.”(웃음)

그분? “제가 겪었던 모든 사건과 사물이 글 쓰는 그 순간 재집결하는 거죠. 집중력이에요. 그분이 안 오시면 쓰다가 덮어요. 수만, 수십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어떻게 제 힘만으로 되겠어요. 뭔가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믿어요.” 강우석 감독과 ‘KnJ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 제작자로도 활약했던 그는 2년쯤 후부터는 회사에서 벗어나 ‘독립군’으로 나설 계획이다. “제작비 100억원짜리든, 1000만원짜리든 ‘비제도권’에서 자유롭게, 신나게 한 번 찍어보려고요. 예를 들면 스마트폰 영화가 될 수도 있고요. 제가 만약 스마트폰 영화를 찍는다면, 박찬욱 감독 다 죽었어요.(웃음) 세상에서 최고의 조명은 태양이고 최고의 필름은 구름, 최고의 미장센은 바람이라는 사실을 보여드릴게요.”

글=기선민 기자 ,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시콜콜] 장진의 화려한 과거

서른 안 돼 웬만한 상 다 받아본 그, 정작 집엔 스틸 사진 하나 없다

충무로, 아니 한국 문화계에서 장진만큼 ‘천재’라는 찬사를 일찍 들은 행운아도 많지 않다. 대학(서울예대 연극과) 시절 이미 학교에서 주는 예장문학상에 희곡 ‘허탕’이 당선됐다. 졸업 후 방송국 예능프로 작가로 일하던 중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천호동 구사거리’가 당선된 게 1995년. 스물네 살 때였다. 이민용 감독의 ‘개 같은 날의 오후’ 각본 작업 참여, ‘허탕’ ‘택시 드리벌’로 대학로 진출, ‘기막힌 사내들’로 충무로 데뷔, ‘간첩 리철진’으로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작품상 수상. 이 모든 게 서른 살 이전에 이뤄졌다. 회사로 따지면 눈이 핑핑 돌 정도의 고속승진이다.

하지만 그는 일찍 쏟아진 어마어마한 찬사를 즐기기보다 경계하는 쪽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기분이 참 이상했어요. 칭찬을 해도 적당히 해야죠. 내가 나를 잘 아는데. 이런 게 다 포장이고 외피에 불과하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어요. 영화 10편 찍으면서 ‘장진교(敎)’를 만들어도 될 만큼 열광도 받아봤고, 한강에 (빠져 죽으러) 가도 될 정도로 뺨도 맞아봤어요. 전 그저 열심히 영화 만들면서 ‘가늘고 길게 가는’ 감독일 뿐이에요.”(웃음)

그는 충무로의 몇몇 젊은 감독을 거명했다. 언론과 평단의 지나친 ‘띄워주기’에 대한 경계였다. “승완이(류승완 감독)도 너무 일찍 뜨는 것 같아 예전에 걱정을 많이 했어요. 나홍진 감독도 그래요. 나 감독도 ‘추격자’ 때 너무 띄웠어요. ‘황해’가 기대만큼 성적이 안 나오니까 마치 감독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돼버렸잖아요. 그건 아니거든요. 얼마 전 ‘황해’를 봤는데 정말 그 장인정신과 세공력(細工力)이 존경스럽더군요. 소주라도 한 잔 사면서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을 정도였어요. 나 감독에게 ‘결국 당신이 한국영화계를 들었다 놨다 할 테니 기죽지 말라’고 격려해주고 싶어요.”

13년간 영화 일을 해왔지만 그의 집엔 영화 스틸 사진이나 포스터 등 ‘기념품’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지나간 일은 흘러가게 둬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요. 이 바닥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는 건 성공사례죠. 성공하는 순간부터 아주 위험한 상황에 빠지는 거예요.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전 늘 수줍은 신인의 마음입니다.”

기선민 기자

장진 감독의 영화

◇각본과 연출

2011년  로맨틱 헤븐

2010년  퀴즈왕

2009년  굿모닝 프레지던트

2007년  아들

2006년  거룩한 계보

2005년  박수칠 때 떠나라(연출만)

2004년  아는 여자

2001년  킬러들의 수다

1999년  간첩 리철진

1998년  기막힌 사내들

◇각본

2010년  된장

2008년  강철중: 공공의 적 1-1

2007년  바르게 살자

2005년  웰컴 투 동막골

2003년  화성으로 간 사나이

2002년  묻지마 패밀리

2000년  동감

1995년  개 같은 날의 오후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영화감독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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