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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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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70년대 유신정권 시절 장발과 미니스커트가 단속 대상이던 때가 있었다. 머리카락을 자를 가위와 치마 길이를 잴 자를 든 경찰과 젊은이들 사이에 숨바꼭질이 거리에서 흔히 벌어졌다. 풍기문란(風紀紊亂)이 죄명이었다. 사회 풍속과 도덕을 어지럽힌다는 해괴한 명목을 들이댔다. 풍기문란죄가 법전에는 없었지만 형법상 공연음란죄와 경범죄처벌법으로 걸었다.

 풍기문란은 80년대 들어 ‘룸살롱 문화’가 번창하면서 다시 거론됐다. 삐뚤어진 접대 음주문화는 호스티스라고 불린 여성 접대부를 양산해냈다. 젊은 처자들이 몸을 던져 돈 버는 세태를 풍기문란 차원에서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정부는 식품위생법 시행령에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 또는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부녀자(婦女子)’라는 유흥접객원, 즉 접대부 조항을 삽입했다. 유흥주점에서만 여성에 한해 접대부를 고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법적으로 남성은 접대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향락산업은 남자 접대부를 둔 호스트바로 퍼져나갔다. 이에 남자 접대부 고용을 법적으로 금지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접대부는 여자여야 하고, 그 서비스는 남성만 향유할 수 있다는 가부장적 발상”이라는 여성계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현행법상 남성 접대부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다. 불법이지만 단속에 걸려도 처벌할 근거가 없다. 대법원도 접대부를 “손님의 유흥을 돋우어 주고 주인으로부터 보수를 받거나 손님으로부터 팁을 받는 부녀자를 가리킨다”는 판례를 유지한다. 호스트바가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 3구에만 100여 곳이 성업 중이고, 하루에 1만여 명의 여성 손님이 들락거린다는 얘기는 역설적이다.

 그제 열린 국무회의에 남성 접대부 문제가 올랐다. 보건복지부·법무부·여성가족부·경찰청 관계자들이 모여 시행령의 ‘부녀자’를 ‘사람’으로 바꾸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못 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남자 접대부를 공인하는 꼴이 날까 걱정했으리라. 풍기문란으로 처벌하던 권위주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를 읊던 기생 황진이를 떠올리며 말세(末世)라고 외면해서 풀릴 일도 아니다. 그릇된 성문화를 바로잡으려면 법부터 현실에 맞게 빨리 손질해야 한다. ‘접대부(接待婦)’와 ‘접대부(接待夫)’를 구별해야 할 날이 머지않은 듯싶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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