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이는 리비아 해법에 속타는 정상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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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위쪽부터 오바마, 캐머런, 메르켈

리비아 시민군과 카다피군 간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서방국들과 유엔 등 국제기구 대표들이 2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리비아 회의’를 열고 카다피 퇴진 때까지 군사작전을 지속할 것을 합의했다. 회의에서는 또 카다피 이후 새로운 정치체제를 준비하고, 국제사회의 효율적인 지원과 협력을 위해 ‘리비아 연락그룹’을 구성키로 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연락그룹은 유엔·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아랍연맹(AL)·아프리카연맹(AU) 등 국제기구들과 긴밀히 협조해 리비아 사태의 조속한 해결에 힘쓰며, 시민군 측의 대표기구인 국가위원회를 직접 상대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날 회의와 관련해 외신들은 “표면적으로는 서방국들이 리비아 사태 해결방안에 대해 합의했지만 각국의 속내가 달라 향후 진통이 예상된다”며 “연락그룹을 구성한 것도 미국·영국 등 서방의 일방적인 주도로 리비아 사태를 해결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현재 리비아 작전에 대한 연합국들의 구체적 목표가 명확하지 않은 것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연합군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미국·영국·프랑스 등의 입장이 서로 달라 효율적인 공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의 경우 리비아 문제를 주도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 경제가 예상만큼 빠르게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전쟁에 나선다는 것은 쉽지 않다.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 프랑스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영국 총리는 리비아 사태를 정치적 돌파구로 삼으려 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프랑스의 경우 적극적인 군사 개입에도 불구하고 사르코지가 이끄는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이 27일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다. 영국 내에서도 리비아 사태에 대한 개입을 비판하는 여론이 만만찮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국내의 강한 반전 여론으로 소극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향후 리비아 사태가 서방의 의도대로 진행될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AP통신 등은 “서방 국가들의 궁극적 목표는 카다피를 퇴진시키고 리비아에 서구식 민주정권을 세우는 것”이라며 “하지만 외세 개입을 꺼리는 리비아 국민의 정서상 카다피 퇴진 후에도 서방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 인근까지 서진했던 시민군은 29일 카다피군의 반격에 밀려 라스라누프로 후퇴했다. 29일 빈자와드를 내준 데 이어 30일에는 석유시설이 밀집한 라스라누프까지 포기한 채 브레가 쪽으로 물러났다. 시민군은 카다피군의 월등한 화력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미·영·프 연합군은 시민군이 패퇴를 거듭하자 이들에게 무기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알랭 쥐페 프랑스 외무장관은 29일 리비아 사태를 논의하는 런던 국제회의에서 프랑스는 반군에 무기를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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