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 연비 높은데 내 차는 왜 기름을 많이 먹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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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신차를 출고받으면 유리창 측면에 공인 연비(㎞/L)를 표시하는 라벨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표시된 자동차 공인 연비를 측정하는 방식이 바뀔 예정이다. 지식경제부와 에너지관리공단이 공인 연비를 실제 운행 상황에 유사하게 측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에너지관리공단 관계자는 “미국에서 최근 자동차 연비를 측정하고 표시할 때 사용하는 ‘5-사이클’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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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운전자들은 자신이 모는 차량의 실제 연비가 카탈로그와 라벨에 표시된 공인 연비와 차이가 많이 난다고 느꼈다.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 기본적으로 실제 연비와 공인 연비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에서는 197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도심의 주행 흐름을 가정해 연비를 측정하는 ‘FTP-75’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를 ‘CVS-75’ 방식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방식은 차량이 평균 시속 34㎞, 최고 시속 93㎞로 17.8㎞를 1875초 동안 달렸을 때의 연비를 측정한다. 하지만 서울 등 국내 주요 도시의 평균 주행 시속은 20㎞를 넘기가 힘들다. 이 때문에 실제 연비와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지식경제부와 에너지관리공단이 도입하려는 ‘5-사이클’ 측정 방식은 시내 주행뿐 아니라 고속도로 주행, 급가속, 에어컨 가동 주행, 외부 저온(영하 7도) 주행 등 다섯 가지 상황을 종합해 연비를 측정하는 것이다. <표 참조>


 미국에서 연비 측정 방식이 확립된 것은 1978년이다. 이때부터 시내 주행 연비와 고속도로 주행 연비를 별도로 측정해 표시하고 있다. 시내 주행 연비는 FTP-75 방식에 따라 측정한다. 이와 별도로 고속도로 주행 연비의 경우 평균 시속 77㎞, 최고 시속 96㎞로 주행한 뒤 연비를 산출한다.

 미국 환경청(EPA)은 2008년부터 5-사이클이란 새로운 측정 방식을 도입했다. 시내 주행과 고속도로 주행에다 세 가지 조건을 추가로 재는 것이다. 급가속 조건에서 평균시속 77㎞로 주행하는 것은 고속도로 주행 조건과 동일하다. 이 경우 최고 시속은 128㎞까지 낼 수 있고, 차량의 순간 가속을 초당 시속 13.6㎞까지 올릴 수 있다. 에어컨 가동 조건과 혹한기 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 온도다. 외부 온도가 35도이고, 습도가 40%일 경우 에어컨을 켜고 달린 다음 연비를 잰다. 외부 온도가 영하 7도 때 혹한기 주행 연비를 측정한다.

 EPA는 2008~2010년 3년 동안 예비기간을 거쳐 올해부터 5-사이클 방식을 공식 도입했다. EPA는 3년 동안 600개 이상의 차종을 대상으로 5-사이클 연비를 측정한 뒤 보정을 거쳐 새로운 연비를 계산했다.

 국내에서 5-사이클 방식을 도입할 경우 기존의 공인 연비(CVS-75)보다 연비 수치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5-사이클 방식을 도입한다고 해서 모든 차량의 연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부 차량의 경우 연비가 다소 좋아질 개연성도 있다. 그것은 엔진 길들이기와 관련이 있다.

 국내에서는 양산 직전 시험 차량(pilot car)을 대상으로 연비를 측정한다. 2002년까지는 6400㎞를 사전 주행한 시험차의 연비를 쟀다. 6400㎞를 달렸던 자동차 엔진은 상당히 길들여진 상태다. 그래서 에너지관리공단은 2003년부터 시험차를 160㎞를 사전 주행시킨 뒤 연비를 측정했다. 이전보다는 공인 연비와 실제 연비의 차이가 줄어들었다. 미국의 5-사이클 측정 방식을 그대로 도입할 경우 시험차의 사전 주행거리는 3000㎞로 늘어나게 된다.

 에너지관리공단 관계자는 “5-사이클 방식으로 측정하되 나온 수치를 국내 사정에 맞게 보정하는 작업을 거쳐 확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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