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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정보.과학계 전망] 5.나노테크놀로지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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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를 하나씩 움직이며 원하는 곳에 서로 붙였다 떼었다 하면서 원하는 구조의 분자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이에 대한 과학자들의 해답은 ''아직 실용화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지만 21세기에는 분명히 가능해 질 것''이라는 것이다.

현대의 최첨단 현미경을 통해 겨우 그 실체를 볼 수 있는 원자나 분자를 마음대로 조작해 신물질을 만들거나 혈관 내부나 세포 등에서 활동할 수 있는 초미세로봇을 개발하는 것이 바로 `나노테크놀로지''이다.

`나노(nano)''는 그리스의 `난쟁이''를 의미하는 `나노스(nanos)''에서 유래된 것으로 말그대로 `작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노''가 단위에 쓰이면 현대과학이 지금까지 다룰 수 없었던 초미시의 세계를 의미하게 된다.

`센티미터(㎝)''의 `센티''가 `100분의 1''을 뜻하는 것처럼 나노테크놀로지의 대상인 나노미터(㎚)에서 나노는 `10억분의 1''을 의미한다.

㎚는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 1㎚는 원자 3-4개를 붙여놓은 길이에 해당한다. 원자를 10억배 확대하면 포도알 정도가 되고 야구공을 10억배 확대하면 지구 크기가 되는 것을 생각하면 나노의 세계가 얼마나 작은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같은 나노의 세계를 과학.기술의 범주로 끌어들인 사람은 소립자간의 상호작용을 그림으로 나타낸 파인만다이어그램을 창안, 195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인만이다.

그는 `원자 설계도에 따라 원자를 하나씩 쌓아나가면서 조립하면 모든 물체와 장치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그의 주장은 당시로서는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한낱 꿈같은 얘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1980년대 분자공학 개념이 등장하면서 강철같은 섬유, 분자크기의 컴퓨터 같은 기대를 불러일으키며 세계적으로 나노테크놀로지 연구 붐을 일으켰다.

과학자들이 나노테크놀로지에 거는 기대는 대단하다.

`창조의 엔진(Engines of Creation)''이라는 저서를 통해 나노테크놀로지의 개념을 정립한 미국의 에릭 드렉슬러는 ''나노테크놀로지는 건강에서 식량 문제까지 인류의 모든 생활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재료과학이나 전자공학, 생명과학 등과 원자를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는 나노테크놀로지가 결합하면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한 과학.기술로는 예측 조차 하기 어려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무토막을 태우고 남은 숯과 연필 심으로 쓰이는 흑연, 다이아몬드의 구성원자는 모두 탄소(C)이다. 단지 생성여건이 달라 탄소 원자들이 다른 구조로 결합돼 있어 숯이나 흑연이 되고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노테크놀로지가 실현되면 숯이나 흑연을 구성하고 있는 탄소 원자를 하나씩 집어내 다이아몬드 구조로 배열, 결합시켜 천연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 때문에 나노테크놀로지는 `21세기의 연금술''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스스로의 동력으로 움직이고 특정 질병에 걸린 세포를 인식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초소형 로봇도 만들 수 있어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

초소형 로봇을 암세포를 인식하도록 프로그램 한 뒤 인체 내에 투입하면 로봇이 혈관을 타고 몸 안을 돌아다니며 암세포만을 찾아 제거한다.

그러나 나노테크놀로지의 실현 전망이 그렇게 밝은 것만은 아니다.

현재 나노테크놀로지의 연구은 극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나노테크놀로지 연구에 이용되고 있는 기기는 기본적으로 물질의 원자, 분자구조를 관찰하기 위해 개발된 일종의 현미경이다.

대표적인 것이 주사형탐침현미경(SPM)과 주사형터널링현미경(STM), 원자힘현미경(AFM) 등으로 모두 물체 표면의 원자구조 등을 연구하는 장비들이다.

최근 이런 장치를 이용해 분자나 원자를 하나씩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개별 원자를 이용해 원하는 구조의 분자를 만드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나노테크놀로지 연구도 활발하다.

지난 97년에는 현재 컴퓨터에 사용되고 있는 반도체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초고밀도 정보기억수단 개발을 목표로 과기부의 지원을 받아 서울대 `나노기억매체연구단''이 출범했다.

연구단장을 맡은 서울대 물리학과 국양교수는 단위 기억소자 크기가 나노미터 수준인 새로운 기억매체를 개발하고 삼성종합기술원 박유근박사팀은 센서 등에 사용될 초소형 구동장치를 , 벤처기업인 PSIA사(社) 박상일박사팀은 나노센서 개발을 담당한다.

현재 컴퓨터에 사용되는 자성물질 반도체는 기억소자 밀도를 높이는데 한계가 있을 뿐아니라 10년 이내에 그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더 적은 면적에 더 많은 정보를 기억시키려면 단위 기억소자가 원자나 분자크기인 나노기억매체가 필요하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또 해외에서 연구중인 우리 과학자가 최근 나노테크놀로지 시대를 앞당길 수 있는 훌륭한 연구결과를 내놔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 주인공은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UC Berkeley) 김필립(金必立.32)박사로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스(12월 10일자)''에 수십-수백㎚ 크기의 분자를 집어서 조작할 수 있는 `나노핀셋(nanotweezer)''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나노핀셋은 생명공학이든 신물질이든 원자나 분자를 직접 다루는 모든 나노테크놀로지 분야에 필수적으로 사용될 핵심장치이기 때문에 앞으로 김박사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고 있다.

광학현미경으로는 볼 수도 없는 미시의 세계를 인간 뜻대로 조작하는 나노테크놀로지가 21세기에는 과학과 산업은 물론 인류 생활 전체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올 것이라는 게 과학계의 일치된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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