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48) ‘김구 선생이 통탄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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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생활 20여 년에 별의별 희한한 일 다 겪습니다. '상하이 스캔들' 말입니다. 스캔들 취재를 위해 상하이에 다녀왔습니다. 총영사관에 들렀습니다. 특파원 생활의 추억이 서린 곳입니다. 그 곳으로 입주한 게 2004년 4월이었습니다. '김구 선생이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면서 이사 준비를 하던 당시 외교관들의 흥분된 표정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러나 상하이 총영사관은 옛날의 그 총영사관이 아니었습니다. 썪은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그 건물에서 벌어졌던 일을 생각하면 창피하기도 하고, 분노하게 됩니다. 외교관이라는 사람이 남의 짐을 들여오다 밀수 혐의를 받고, 법무부에서 일한다는 영사가 부인을 영사관에서 패고, 총영사와 부총영사는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공관을 관리해야할 총영사는 쉬쉬 사건 감추기에 바빴습니다.

그곳에서 뭔 일이 있었는지, 그들이 뭔 짓꺼리를 했는지는 더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언론에 리얼하게 공개가 됐으니까요. 김구 선생이 이 일을 알았다면 땅을 치고 통곡을 했을 겁니다(총영사관 1층 로비. 최고급 대리석을 사용했다).

그런데 사건은 정작 이렇게 흐지부지 끝나는 듯 싶습니다. 엊그제 정부합동조사단 결과가 발표됐더군요. 한 때 온 나라를 흔들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일본 쓰나미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우리는 항상 그렇게 빨리 달았다, 금방 식어버립니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제도적 틀을 짜야 발전이라는 게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과연 그럴 수 있을 지 의문입니다. 누군가는 지금 뒤에서 우리를 비웃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 니들 하는 일이 다 그렇지, 이번에는 또 무엇으로 쏠리니?'

난 그래서 더 화가 납니다.

'상하이 스캔들', 우리나라 외교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입니다. 한 여인에게 최고의 엘리트 영사들이 밤낮으로 놀아났으니 말입니다. 어느 한 외교관의 그릇된 행동이었다면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영사가, 공관을 책임지고 있는 총영사마저 그 사건에 연루됐다면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외교의 구조에서 그 문제를 찾아야 합니다.

어느 영사가 덩신밍이라는 여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는지는 저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다만 이번 사건을 낳게 했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정부합동조사단이 지난 주 밝힌 상하이 총영사관 조사 결과 발표문에서 원인 찾기를 시작합니다. 그 발표문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외교활동비)집행시 '내국인 접대 지출액 25% 초과 금지'규정을 위반하여 오히려 국내 방문인 등에 과다 지출.
- 09년도 구축비 77,383달러 중 내국인 접대에 57%(44,080달러)사용
- 10년도 구축비 74,240달러 중 내국인 접대에 69%(51,459달러)사용/

요약하자면, 중국 사람 만나 외교하라고 준 돈을 한국 사람한테 썼다는 얘깁니다. 국익을 위해 외교하라고 국민이 낸 세금을 한국에서 온 상관 술 퍼먹이고, 밥 멕이는 데 썼다는 것이지요.

합동조사단 발표문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본부직원 출장 시 패키지 관광, 룸살롱 출입 등 과도한 접대, 영사 순회활동 중 개인 용무 행위 등 근무기강해이 사례가 다수 확인. 현지 상사주재원 등으로부터 골프접대 및 향흥 수수 사례도 일부 확인됨./

그들의 생활이 어떠했을 지, 더이상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총영사관 영사 나리들이 교민들에게 무시당하고, 비웃음을 사는 겁니다. 영사들의 뇌세포에 이 같은 모럴 헤저드가 박혀있었기에 덩이라는 여성이 총영사관 '담장'을 넘을 수 있었던 겁니다.

2006년 말.

한 여인이 대한항공 상하이 지점에 나타납니다. 자기의 이름을 덩신밍(鄧新明)이라고 했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는 상하이시정부 부서기의 한국행 비행기표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며 데스크 직원에게 일을 맡겼습니다. 항공사 사무실 직원에 있었던 불과 몇 분 동안 그의 행동은 이상했습니다. '내 뒤에 엄청난 권력이 있다'고 했고, '어려운 일 있으면 처리해주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당시 이 여인을 만났던 직원 K씨는 "기다리는 몇 분동안 직원들에게 '내가 덩샤오핑 집안의 후예이며, 배후에 강력한 권력이 있다'고 허세를 부렸다"고 증언합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덩씨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교민사회에 나타나 권력자 행세를 하고 다녔습니다. 교민들에게 낮선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2004년 이후 한국인 남편 J씨, 그리고 딸과 함께 한국인 거주 아파트에 살고 있었으니까요. 교민들이 기억하는 덩씨는 지극히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덩씨의 딸과 같은 나이의 자녀를 둔 한 교민은 그를 분명히 기억합니다.

/그집 딸과 우리 딸은 같은 유치원에 다녔습니다. 딸은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왔지요. 덩씨는 딸 산보를 시키며 맛있는 것을 사주고, 남편 저녁 상에 무엇을 올려야할 지를 고민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옷도 수수하게 입었구요. 그가 덩샤오핑 집안 인물이었다면 그렇게 생활했을 리 없겠지요./

그 여인의 배경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평범했던 덩씨가 어떤 일을 계기로 권력에 가까워 졌고, 권력자 행세를 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는 한국 교민 사회에 뛰어들어 브로커 일을 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평범한 브로커를 넘어 정치 스파이처럼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다음 칼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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