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점 엄마 멘토링 ④ 할머니도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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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티 마영례 할머니는 여섯 살 손녀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고민이다.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손자·손녀 양육은 할머니들의 몫이 됐다. 옛말에 ‘애 보느니 밭일한다’고 했다. 아이 돌보기가 그만큼 힘들지만 직장 다니는 딸과 며느리를 위해 할머니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 손자·손녀가 별 탈 없이 잘 자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할머니들의 마음은 무엇 하나라도 가르치고 싶다. 마영례(66·서울 관악구) 할머니도 바쁜 며느리를 대신해 여섯 살 된 큰 손녀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싶은데 마음 같지 않다. 온라인에서 ‘송이 할머니’로 더 유명한 김신숙(59·경북 경주시) 할머니가 멘토로 나섰다. ‘송이와 할머니(cafe.naver.com/kss364.cafe)’ 카페를 운영하는 김 할머니는 영어를 전혀 못하면서 손녀를 영어 도사로 키워 자녀들에게 직접 영어를 가르치고자 하는 젊은 엄마들 사이에도 인기를 끌고 있다. 김 할머니의 비결을 들어봤다.

Q 어떻게 손녀와 영어 공부 했나요

A 목욕할 때, 잠잘 때 짬짬이 영어 테이프 틀어줬죠

은송이가 태어나서부터 초등 1년까지 키웠다. 지금은 6학년이다. 은송이가 생후 4개월 때 지능 계발을 위해 영어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아 영어교육서를 봤는데 영어 CD를 들려주고 단어 카드만 보이면 된다고 했다.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교재와 테이프가 함께 있는 것을 구입해 들려주기 시작했다. 『Brown Bear, What Do You See?』를 샀는데 막상 읽어 주려니 ‘bear’도 읽을 수 없었다. 돋보기를 쓰고 영어사전에서 발음기호를 찾았다. 내가 한 번 읽어 주고 테이프를 틀어 줬다. 해석은 하지 않고 읽어 주기만 했다.

 밥을 먹을 때나 목욕할 때, 잠잘 때 정서 안정을 위해 음악을 틀어 주는 사이사이 영어 테이프를 틀었다. 잠자기 전에는 그날 봤던 영어동화 중에서 가장 재밌어한 것을 틀어 줬다. 아침에는 전날 밤에 들었던 것을 들려줬다. 만 6세가 되니 학원을 다니지 않고 외국인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수준이 됐다. 은송이와 영어 공부한 내용을 ‘쑥쑥닷컴(www.suksuk.co.kr)’에 재미 삼아 올리면서 엄마들의 호응을 받게 됐다.

Q 한글을 쉽게 깨우치게 한 방법은

A 밥상에 ‘물’ ‘김치’ 쓴 카드 함께 놓고 읽어보게

은송이는 생활 속에서 한글을 깨쳤다. 밥을 먹을 때는 밥상 위에 ‘물’ ‘김치’라고 쓴 카드를 올려놓았다. ‘솔’이란 글자가 나왔을 때는 집 안팎에서 솔이 들어간 것은 다 찾았다. 김밥놀이도 했다. 큰 종이에 펜으로 김이라고 쓰고, 노랑·빨강 펜으로 소시지, 단무지 글자를 종이에 쓴 다음 김이라고 쓴 종이로 둘둘 말았다. 툭툭 썰어 글자가 토막 나면 다시 글자를 맞추며 놀았다. 외출할 때도 매직펜과 우유팩을 가지고 다녔다. 화단에 민들레가 있으면 우유팩 카드에 민들레라고 써서 보여 줬다. 소화기를 가르치려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Q 책과 가까이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인형에게 책 읽어주니 자기도 읽어 달라고 졸라

은송이도 어려서는 책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책 보자”고 하지 않았다. 은송이가 좋아하는 인형을 옆에 끼고 동화책을 읽어 줬다. 다 읽은 뒤 인형을 업어 줬더니 옆에 있던 은송이가 “나도 책 읽어 줘” 하며 다가왔다. 인형에게 읽어 줄 때 한 번 듣고 또 한 번 듣는 셈이다. 책 속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게도 했다. 비디오를 볼 때도 같은 내용의 책을 은송이 손에 쥐여 줬다. 내용은 몰라도 똑같은 그림 찾기를 하니 책과 가까워졌다. 할머니와 인형을 앉혀 두고 책 내용을 말하는 발표회도 가졌다. 책 모서리에 스티커를 붙여 두니 편독이 없어졌다. 다 읽은 책으로 탑 쌓기도 했다.

Q 아이가 이해를 못할 때는 어쩌죠

A 바로 답 못하면 “~라고 말하려 했지” 대신 말해야

아이 눈높이에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격을 존중해 줘야 한다. 아이에게 “이거 뭐야”라고 물으면 얼른 대답을 못할 때가 있다. 이때 3초 이상 넘기지 않도록 한다. 아이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너~라고 말하려 했구나” 하며 대신 말해 준다. 다음에 같은 것을 또 물어보면 대답하려고 기억력도 좋아진다. 우리가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아이들은 경험이 없어 이해가 쉽지 않다. 대답을 잘 못한다고 꾸짖게 말고 2~3번 반복해 줘야 한다.

Q 할머니가 교육하기 힘들지 않나요

A 손녀 실력 느는 재미 … 영어 논술 자격증도 땄죠

손녀에게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것 외에 무언가 해 줄 수 있어 기뻤다. 영어 공부를 하다 보니 여고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행복했다. 갱년기도 언제 지나갔는지 몰랐다. 은송이의 영어 실력이 쌓이는 걸 보고 영어 학습법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영어 논술지도사 자격증도 따고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영어교사도 했다. 부모님께 아이를 맡길 때는 컴퓨터를 사 주고 영어·한글 동화 사이트에 들어가는 방법만 알려 주길 바란다. 할머니도 즐겁게 육아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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