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지구촌 경찰로 행동 안 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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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사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리비아 군사 개입 목표가 민간인 학살 방지이지, 최고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dafi) 정권의 교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제한적 전쟁 개입을 재확인한 것으로, 이라크 전쟁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것이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을 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으나 미군 점령에 반대하는 반군들이 들고 일어나며 지금까지 전쟁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8일 저녁(현지시간) 워싱턴 국방대학(NDU) 연설에서 “이라크 정권 교체는 8년이라는 세월과 많은 미국인과 이라크인의 목숨, 1조 달러(약 1110조원)가량의 전쟁 비용을 필요로 했다”며 “리비아에서 이런 일이 되풀이되도록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리비아 정권이 국민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하는 걸 저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군사 개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군사 개입을 정당화했다. 뉴욕 타임스(NYT)는 오바마 대통령이 군사 개입을 ‘전쟁(war)’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개의 전쟁을 수행 중인 미국으로서는 또 하나의 전쟁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리더십은 단순히 혼자 행동하며 모든 부담을 떠안는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진정한 리더십은 다른 나라들도 참여하게 하고 동맹이나 파트너들이 부담과 비용을 함께 짊어질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은 중동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지만 탄압이 있을 때마다 ‘지구촌 경찰(world’s policeman)’로서 행동에 나설 수는 없다. 미국은 (중동) 변화의 속도와 범위를 정할 수 없다”고 말해 중동 개입이 제한적일 것임을 시사했다. AP통신은 이날의 연설 내용이 전적으로 사실과 부합하지는 않는다고 보도했다. 오바마가 “미국은 다른 나라의 잔혹 행위에 눈감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로랑 그바그보 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이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반대파를 유혈 진압한 데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었다.

 오바마의 연설은 리비아 군사 개입에 대한 미국 내 불만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마련됐다. 공화당 강경파들은 미국이 더 강하게 군사 개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민주당 온건파들은 개입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일부 상·하원 의원들은 리비아 사태가 미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아닌데도 의회 승인 없이 군사 개입에 나선 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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