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2011 시계 트렌드는 ‘네오 클래시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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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바젤월드에는 수많은 시계가 저마다 첨단 소재와 기술, 화려한 디자인을 뽐내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24일(현지시간) 롤렉스 전시장 앞에서 발길을 멈춘 한 관람객. [바젤 AP=연합뉴스]


지상 최대의 시계 박람회 ‘바젤월드’에 다녀왔다. 손목에 어떤 시계를 찼느냐가 그의 안목과 지위를 나타내는 시대, 잘나간다는 시계가 모두 모여 있는 이곳에 안 가볼 수 없었다.

스위스 바젤시 종합전시장(메세플라츠)을 중심으로 6개의 전시장에서 23(현지시간)~31일 열린 올해 전시회에는 세계 45개국에서 627개 시계업체가 참여했다.

바젤시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10만 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바젤은 도시 입구부터 시계 광고로 도배되다시피 했고, 행사장 주위는 각 나라의 부호와 패셔니스타(패션 흐름을 선도하는 인물)로 가득했다.

세계 최대 패션기업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전시장을 누비는 모습도 목격됐다. 저녁엔 화염이 솟구쳐 오르는 무대 위에서 수십 명의 여성이 퍼포먼스를 벌이는 화려한 쇼가 진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름 4㎝ 안에 우주를 담아내는’ 수만 개의 시계가 관람객을 빨아들였다.

스위스 바젤=이정봉 기자

스위스 시계 박람회 ‘바젤월드’에 가다

바젤월드 주 전시장인 제1홀은 전시기간 내내 관람객으로 붐볐다. [바젤 신화=연합뉴스]

시계 업계는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2008년부터 2년간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번 바젤월드에서 그 흔적을 전혀 찾기 어려웠다. 행사장이 문을 여는 오전 9시면 전시장 메인 홀 입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티파니 시계 부스 앞 카페에서 만난 나일라 하이에크 스와치그룹 회장은 “올해 행사장 분위기는 지난 몇 년에 비해 매우 밝다”고 말했다. 스위스 시계협회에 따르면 스위스 시계 매출은 2010년 전년에 비해 22% 성장했다. 올해는 그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전시회에 참가한 시계 업체들은 독특한 장식과 젊은 모델을 앞세워 눈길을 끌었다. 고급 시계 브랜드 ‘블랑팡’은 장인이 현미경을 이용해 시계 부품을 깎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커다란 LCD TV를 설치했고, 한쪽에는 고급 스포츠카 람보르기니 주위에 시계를 진열했다. 철저한 장인정신은 고수하면서 젊은이를 위한 모델이 대거 등장한 이번 바젤월드의 트렌드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이번에 젊은 층을 겨냥한 시계 ‘퍼시픽’을 새로 내놓은 스위스 시계업체 크로노스위스의 게르트 랑 회장은 “시계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지금까지 스위스 시계가 기계식 시계에 대한 로망을 가진 장년층을 위한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젊은 층을 위한 모델 개발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큼직한 다이얼, 검정과 흰색이 강세

바젤월드 미디어 행사가 열린 23일(현지시간) 시계업체 오렉스 포스터 앞을 행사장 요원이 지나고 있다. [바젤 신화=연합뉴스]



올해 전시회에 ‘네오 클래시즘’이라 불리는 복고 트렌드 시계가 많이 나왔다. 검정과 흰색, 원형 다이얼(문자판)이 여전히 강세였다. 남자는 40~46㎜, 여자는 34~40㎜의 큰 다이얼이 선호됐다. 색상은 푸른색과 권총 소재처럼 짙은 회색이 부쩍 늘었다.

세라믹과 DLC(다이아몬드와 유사한 구조의 탄소막) 등 신소재가 발달하면서 스틸 소재의 시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빛깔을 드러내는 제품도 많았다. 세라믹과 DLC는 스틸보다 단단하고 흠집이 잘 나지 않으면서도 금속의 질감이 느껴진다. ‘라도’는 티타늄 카바이드와 산화 지르코늄 등 신소재를 섞은 세라믹으로 강력하면서도 얇은 ‘트루 신라인’을 내놓았고 ‘롤렉스’는 세라믹으로 베젤을 코팅한 제품을 새로 출시했다.

세계 최고의 시계 브랜드 파텍필립·브레게는 약속이나 한 듯 여행자들을 겨냥한 월드타임(두 개의 시간대를 동시에 표시하는 기능) 시계를 선보였다. 파텍필립의 ‘5164-아쿠아노트 트래블 타임’은 2개의 시침으로 두 개의 시간대를 가리키고 밤과 낮도 표시한다. 브레게의 ‘클래시크 5717 오라 문디’는 버튼을 누르면 시침이 미리 기억한 다른 시간대로 단숨에 옮겨간다.

“한국 시장, 매년 30~40% 매출 늘어”

전시장에는 세계 최대 시계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이 느껴졌다. 전시장 어디에서든 중국어가 들렸다. 스위스 시계 업체 ‘장데브’의 직원 아냐-엘레나 브란디스(27)는 “영어와 중국어로 번역된 자료를 반드시 갖춘다”고 말했다. 고급 시계 브랜드 ‘쇼파드’는 지난해 세계 5대 전략적 부티크숍 중 두 군데를 상하이와 선전에 마련했다. 올해 처음으로 45㎜ 다이얼의 ‘빌레레 6615’ 모델을 내놓은 ‘블랑팡’은 무브먼트에 스위스·프랑스·일본과 더불어 중국의 풍경을 그려 넣었다.

스위스 시계협회의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23일 바젤 ‘라디슨 블루 호텔’에서 열렸던 한국 시계업체 간담회 자리에 스위스 시계협회장 다니엘 파셰 회장이 나타났다. 그는 “한국은 시계 매출이 매년 30~40%씩 늘고 있는 잠재력 큰 시장”이라며 한국 업체의 수준도 향상돼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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