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치] 호르몬 훈련으로 비만을 잡는다

중앙일보

입력

[박민수 박사의 ‘9988234’ 시크릿]

가정의학과 전문의
박민수 박사

사람들은 멈출 수 없는 식탐 때문에 체중관리는 성공이나 재산축적보다 더 힘든 영역이라고들 말한다. 어째서 우리는 이토록 음식 앞에 약한 것일까?

인류는 매우 오랫동안 폭식과 기아를 반복하는 시기를 견뎌왔다. 게다가 음식을 얻기 위해 분투했던 수렵시대나 농경시대에는 쉼 없는 육체활동 탓에 살찔 겨를이 없었다. 이런 일이 거듭되는 동안 약간 식욕이 강한 인류가 살아남는 쪽으로 진화가 진행됐다. 따라서 인간이라면 누구든 신체의 필요보다 조금 더 많은 식욕을 가지게끔 설계되어 있다.

또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사회는 음식에 관한 한 약간의 중독에 빠지는 것이 인간의 유전형질에 충실한 일이라는 결론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따라서 음식에 대한 선택권이 무궁무진해진 현대인이라면 몸에서 솟는 유전자의 외침에 따라 다소 비만이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식탐의 노예로 살아야 될 것인가? 식탐에 대항할 무기를 영영 가질 수 없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인간 모두에게는 식탐의 반란에 맞설 충분한 내적 역량이 있다.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교 교수 미하이 칙센미하이는 인간의 유전자가 진화해왔듯이 인간의 자아 역시 미래상을 갖고 차츰 복잡성을 함양해가며, 이상적인 상태로 진화해간다고 주장한다. 식욕을 통제하는 일은 수많은 증거들이 증명하듯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힘든 일이란 식탐과 비만에 사로잡힌 이들이 나는 변화할 수 없다는 편견과 선입견을 깨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31일 락다이어트습관에서 식탐 탈출을 위한 KAP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KAP는 통찰의 지식(Knowledge)으로 태도(Attitude)를 변화시키고, 반복을 통해 견고해진 태도가 실천(Practice)을 이끈다는 뜻의 약자이다.

락다이어트 KAP 모델의 두 가지 기둥은 렙틴강화법과 그렐린통제법이다. 이 둘은 한 가지 방법만으로는 큰 효과를 얻을 수 없기에 조화를 이룬 채 병행해나가야 한다. 그렐린은 위와 시상하부의 식욕중추에서 동시에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배가 고플 때 식사를 하게끔 충동한다. 위는 생체리듬에 따라 밥을 먹은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그렐린을 분비해 배고픔을 느끼게 만든다. 음식을 먹기 시작한 후, 약 20분쯤 경과하면 몸 안의 그렐린의 농도는 현격히 낮아지고 렙틴호르몬의 양이 차츰 증가한다. 또 CART 호르몬이 늘어 렙틴수용체가 활성화되고 이어 포만중추가 자극된다.

이런 내몸의 식욕과 음식거부 과정을 이해하면 식욕을 조절하고 차단하는 일 역시 한결 용이해진다. 렙틴의 양은 그렐린의 양에 비례해 증가한다. 체내 렙틴이 그렐린에 비해 많다고 해서 무조건 식욕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만인 사람의 경우 오히려 체내 렙틴의 양이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른바 렙틴저항성이라는 것이 생겨 렙틴이 뇌혈관 안으로 잘 통과하지 못하게 된다.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살을 빼거나 체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렙틴의 잠재력은 강화하되 상대적으로 그렐린의 분비량은 줄이는 양동작전을 펼쳐야만 한다.

렙틴강화 & 그렐린 억제 훈련법
1. 아침을 절대 거르지 않는다. 아침을 거르는 사람이 통계상 더 비만하다. 식사를 거르는 사람의 경우 그렐린 호르몬이 약해져 밥맛이 더욱 없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2. 세 끼를 꼬박꼬박 규칙적으로 먹어 그렐린과 렙틴의 주기리듬을 살린다.
3. 음식은 꼭꼭 천천히 씹어서 렙틴이 활동할 때까지 시간적 여유를 확보한다.
4. 물을 자주 마셔 그렐린 등의 식욕호르몬 활동을 교란시킨다. 하루 물 2리터 섭취는 식탐해소에 큰 효과가 있다.
5. 칼로리는 낮지만 섬유질이 많이 든 음식으로 포만중추를 충분히 만족시킨다. 섬유질 많은 음식은 영양소가 풍부하다는 이점도 있다.
6.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활동으로 렙틴의 능력을 강화시킨다. 가령 박장대소를 하고 나면 오히려 식욕이 준다.
7. 운동은 식욕이 더 생길 정도로 힘들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단 식욕이 더 생기지 않는다면 육체활동은 많을수록 좋다.
8. 배가 고프면 무조건 참지 말고 조금이라도 먹어야, 그렐린의 심한 준동을 막을 수 있다.
9. 식사할 때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면 천천히 먹게 되고, 도파민 분비도 촉진시킨다.
10. 식사할 때 걱정이나 나쁜 일은 떠올리지 말아야 스트레스를 막아서 그렐린의 분비를 억제할 수 있다.
11. 나온 음식은 모두 먹어야 한다는 체면이나 강박관념은 버리라. 음식은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편견도 버린다. 오래 건강하게 살려면 적게 먹어야 한다.
12. 급하더라도 제 시간을 정해놓고 식사시간을 20분 이상 지켜야 한다. 20분은 지나야 렙틴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다.
13. 식사의 조건을 재구성한다. 젓가락으로 식사한다. 그릇의 크기를 바꾼다. 음식쇼핑은 계획을 세워, 횟수를 최소화한다. 간식거리를 사지 않는다. TV광고가 나오면 딴 채널로 돌린다. 오늘 먹은 음식들을 저녁에 메모장에 적어본다. 냉장고 청소를 자주 실시한다. 외식횟수를 줄이고 집에서 가족과 함께 요리와 뒷정리를 즐긴다.
14. 야근이나 밤샘 근무를 하면 그렐린의 분비가 촉진되어 식욕이 강해진다. 마찬가지 충분한 수면을 하지 않으면 식욕이 강해진다. 일찍 자는 것이 보약이다.
15. 다이어트중이라도 일주일에 2-3회는 먹고 싶은 음식을 즐긴다. 식탐은 심리적인 원인이 크다. 자신에게 충분히 위로하며 큰 선심 쓰듯이 맘껏 먹기를 즐긴다. 만족감을 최대한 고양시키면 다음 번 식탐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이때도 역시 지나친 과식은 금물이다.
16. 건전한 여가활동은 음식 욕구의 총량을 줄여 음식을 적게 먹도록 돕는다.
17. 음식욕구가 강해질 때 명상과 심호흡을 실시하면 식탐의 상당부분을 해소할 수 있다. 18. 식사는 자연과 신이 내게 준 선물이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하자. 세로토닌과 도파민 같은 보조적인 식욕억제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할 수 있다.

박민수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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