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베이비부머 은퇴자 모른 척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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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내에서 베이비부머(baby boomer)는 한국전쟁 뒤인 1955~63년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현재 전체 인구의 약 15%인 712만 명에 달한다. 높은 출산율 속에 태어난 이들은 더 경쟁적인 삶을 살아와야 했다.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한 이들이 벌써 은퇴시즌에 들어섰다. 이제 50중반이지만 정보화 사회의 빠른 물살에 밀려 벌써 퇴물 취급을 받는다. 이들은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로부터의 부양은 기대할 수 없는 첫 세대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해 한 생명보험회사가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와 공동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이 생각하는 은퇴 후 생활비는 월 211만원이었지만 은퇴 대비 저축은 한 달에 고작 17만2000원으로 나타났다. 60세부터 받기로 돼 있는 연금을 30%나 손해 보면서 5년 앞당겨 타 쓰는 사람이 늘고 있는 현상이 이해가 간다.

 이들이 가진 값진 경험은 8~9%에 이르는 청년실업률 뉴스에 묻히곤 한다. 하지만 정부와 재계가 이들을 무심하게 둬서는 곤란하다. 15%에 이르는 그들의 비중이 이미 사회적 이슈임을 말해준다. 정부는 겨우 1년 전에야 베이비붐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움직이고 있으나 시늉만 하는 정도다. 엊그제 노사정위원회가 이들의 정년 연장을 법제화하는 문제를 논의했으나 타결은 힘들다고 한다. 사실 정년 연장을 강제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문제다. 비용을 부담하는 기업들의 반발만 불러일으킨다. 정년을 늘린다 해도 그 전에 퇴직하는 사람이 이미 수두룩한 현실에서는 의미도 적다. 이 문제는 역시 기업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끌어내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부자 기업이라 해도 모든 퇴직자를 다 구제하기는 불가능하다. 기업으로 하여금 다양한 변형근로를 고안해 내도록 하고, 가능한 한 많은 은퇴직원들에게 계속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업은 유사한 노동을 싸게 쓰고, 당사자는 일터를 유지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을 찾아야 한다.

 은퇴자들이 계속 일할 경우 젊은이들이 더욱 희생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으나 일의 성격을 달리하면 그런 문제는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사회적 안전판을 마련하고 노년층 복지정책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매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