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상장폐지 심사위원들의 탈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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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기업의 증권거래소 상장과 퇴출은 엄격하고도 공정해야 한다. 불특정 다수 투자자들의 재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상장 폐지를 결정하는 심사위원들을 뽑고 관리하는 한국거래소는 문제가 많다. 회계사인 한 위원은 퇴출을 막아 주겠다며 업체에 3억원을 요구한 뒤 1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다른 사람은 심사위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다른 위원들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2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우선 심사위원 선정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거래소가 자격이 없거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뽑았다는 말이다. 상장폐지 실질심사제도는 2009년 2월 주식시장의 신뢰와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상장사의 대표적인 퇴출요건은 두 가지다. 적자가 누적돼 자본금을 다 까먹은, 다시 말해 자본잠식이거나 회계법인이 그 회사의 재무제표를 믿기 어렵다고 판단해 ‘감사의견 거절’을 내는 경우다. 퇴출요건의 경계선에 놓이는 기업도 나오게 마련이다. 판단이 어려운 경우 실질심사위원들이 동원된다. 이때 거래소는 심사위원(현재 29명) 가운데 8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퇴출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이들의 임무는 이처럼 막중하다.

 하지만 심사위원을 선정하는 과정은 불투명하다. 명확한 선정 기준도 없이 거래소의 담당 본부장이 결정한다고 한다. 연고에 의한 부적격 인사가 끼어들 소지가 있는 것이다. 심사위원을 잘못 뽑으면 퇴출돼야 할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개연성이 있으니 상장폐지에 몰린 기업들이 돈을 싸 들고 로비를 하는 것이다. 여의도에 이런 일을 하는 브로커도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로비로 연명한 기업은 나중에 더 큰 파장을 일으키며 도산하는 경우가 많다.

 심사위원의 사후관리도 부실했다. 거래소는 기업들의 로비를 우려해 심사위원 명단을 비밀로 하고 있다고 하지만 시장에선 ‘알 사람은 다 안다’고 한다. 또 이번에 걸린 심사위원이 소속된 회계법인이 허위감사로 금융위원회로부터 6개월 영업정지를 당했음에도 거래소는 한 달이 지난 뒤에야 그 위원을 명단에서 삭제했다. 거래소가 어려운 결정의 부담을 덜기 위해 외부 심사위원 제도를 운영한다면 무책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