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페셜 리포트] 개포 재건축 평촌크기 4만 가구 재탄생 … 30조원 건설 시장 열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개포지구에서 20여 년간 살고 있는 최영철씨(오른쪽)와 10여년 전에 이사 온 이진석씨가 개포지구의 낡은 시설을 돌아보며 재건축 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15년 동안 깔렸던 먹구름이 걷혔다. 서울 강남권 최대인 개포지구 아파트 2만8000여 가구가 곧 재건축을 시작한다. 1990년대 중반 개포주공1단지 시공사 선정을 시작으로 촉발된 재건축은 투기 방지, 집값 상승 억제 등의 이유로 수차례 벽에 부닥치며 횡보를 거듭했다. 강남뿐 아니라 수도권 부동산 시장을 움직일 초대형 사업이어서 오히려 불이익을 많이 받았다고 이곳 주민들은 여기는 것 같다. 우여곡절을 겪은 개포지구 주민들에게 이 재건축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리고 부동산 시장에 미칠 파급효과는 얼마나 될까.

한 채에 8억원이 넘는 집이지만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베란다, 바람이 불면 부서질 것 같은 창틀에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이 있다. 열악한 주거환경 때문에 전셋값이 워낙 싸 전세를 주고 이사 가기도 쉽지 않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189번지 일대 개포주공아파트 토박이 주민들의 얘기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재건축 얘기가 나오면서 손바뀜도 많았지만 전체 주민의 30% 정도는 약 20년 전부터 같은 곳에서 살고 있다. 기자는 25일 재건축계획이 확정된 개포지구를 찾아 이들을 만났다. 주민들은 일단 “늦었지만 다행” “15년 동안 쌓인 재건축 한이 풀린 것 같다”며 재건축계획안 통과를 반겼다.

 하지만 토박이 주민들은 추가부담금(재건축 때 내는 돈) 걱정에 표정이 썩 밝지만은 않았다. 20년을 살았다는 최영철(43)씨는 “조금 큰 집에 살려면 수억원을 더 들여야 하는데 어떻게 감당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개포지구는 32개 단지 2만8000여 가구로, 북쪽에 12~15층 21개 단지가 몰려 있고 남쪽에 저층 11개 단지 1만4000여 가구가 들어서 있다. 82년 입주한 저층 단지는 당시 값이 싸 서민들의 보금자리로 여겨졌다. 그러나 주거환경이 썩 좋지 않았다. 입주 초기부터 살고 있다는 황태원(37)씨는 “주변이 온통 진흙탕투성이여서 ‘장화 없인 못 산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개포지구는 강남권 노른자위 재건축단지라는 이유만으로 열악한 주거환경에도 불구하고 재건축이 번번이 무산됐다. 정부의 집값 안정대책, 투기 방지대책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구청장이나 시·구의원들은 선거 때면 철석같이 재건축을 약속했지만 그때뿐이었다.

 10여 년 전 이사 온 김애숙(55)씨는 “정부가 주거환경 개선은 무시하고 집값 안정에만 신경 쓰는 동안 주민들의 안전이 위협당하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이 말하는 개포지구 재건축사업의 당위성이다. 시간이 더 걸릴 것이란 예상과 달리 재건축계획안이 서울시를 통과한 것도 이런 주민들의 삶이 고려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우여곡절을 겪은 개포지구는 이제 최고 35층 높이의 아파트 4만1135가구의 신도시급으로 새로 태어난다. 경기도 평촌신도시(4만2000여 가구)와 맞먹는 규모다. 10년 넘게 살고 있는 이진석(41)씨는 “주민들의 기대치에는 못 미치지만 새 고층 아파트로 탈바꿈하면 강남을 대표하는 주거지가 될 것”이라며 재건축에 대한 기대를 나타났다.

 개포지구 재건축이 가지는 또 다른 의미는 경제적 파급효과다. 직접 사업비만 30조원에 이를 것으로 건설업계는 추산한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일감이 떨어진 건설업계에 개포지구 재건축사업은 단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포지구 개발에 따른 경제적 유발효과도 20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강남구는 내다본다. 한국경제학회는 지난해 개포지구와 비슷한 4만여 가구가 건립되는 경기도 김포시 양촌지구 개발로 생산유발효과 18조원, 고용창출효과 28만 명의 경제효과가 생길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무엇보다 주택시장에 미칠 파장이 관심거리다. 현대경제연구원 임상수 연구위원은 “강남권 요지인 데다 규모가 워낙 커 개포지구 개발이 본격화하면 주변 집값과 땅값이 들썩거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재건축계획안이 서울시를 통과한 직후인 24일 하루에만 개포주공아파트 호가(부르는 값)가 2000만~3000만원 급등했다.

 비슷한 사정의 다른 아파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울 대치동 은마, 잠실 주공 5단지 등에도 향후 전망 등을 묻는 문의 전화가 이어졌다. 잠실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주공 5단지 재건축사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한 주민과 투자자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집값 얘기가 나오자 의외로 토박이 주민들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개포지구가 투기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민은 “집값이 불안해지면 정부가 다시 재건축을 규제하고 나설 수 있다”고 걱정했다.

 앞으로의 재건축은 역기능(집값 자극)보다 순기능(주거환경 개선)을 살리는 쪽으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양사이버대 부동산학과 지규현 교수는 “투기나 투자의 대상으로 재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며 “수요가 많은 도심에서 새 주택을 공급하는 데 재건축만큼 효율적인 방법은 없다”고 지적했다.

황정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