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우주견 벨카·스트렐카, 지구 17바퀴 돈 뒤 무사 귀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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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호 32면

2000년 1월 공개된 미국 국무부의 외교 문건 중 1961년 6월 21일자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서기장에게 보낸 서신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권기균의 과학과 문화 인간에 앞서 우주를 비행한 견공들

“…우리 부부는 ‘푸싱카’를 받고 특히 기뻤습니다. 푸싱카가 소련에서 미국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 것은 그 어미의 비행만큼 극적이진 않지만 긴 여행을 잘 견뎌냈습니다…바쁘신 중에도 이런 것들을 기억해 주시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푸싱카’는 강아지다. 어미는 소련이 발사한 우주선 ‘스푸트니크 5호’에 실려 지구궤도를 돈 뒤 귀환한 최초의 우주견 ‘스트렐카’다.

60년 8월 19일, ‘벨카’와 ‘스트렐카’라는 이름의 두 마리 개가 스푸트니크 5호에 실려 발사됐다. 토끼 2마리, 새끼쥐 40마리, 성체 쥐 두 마리, 파리, 식물, 버섯 같은 균사체들도 실렸다. 이들은 지구 상공 궤도를 17바퀴 돈 뒤 발사 하루 만에 모두 살아서 지구로 돌아왔다. 이 비행으로 우주에 생명체를 보낼 수 있다는 게 증명됐다.

우주에서 돌아온 벨카와 스트렐카.

몇 개월 후 스트렐카는, 우주비행은 안 했지만 지구에서 여러 우주 실험에 참여하고 있던 개 ‘푸쇼크’와의 사이에서 여섯 마리 새끼를 낳았다. 흐루쇼프가 그중 한 마리를 케네디의 딸 캐롤라인에게 선물로 보내주었는데, 그 개가 푸싱카다. 케네디 대통령과 가족들은 개를 아주 좋아했다. 이미 여러 마리를 백악관에서 키우고 있었다. 케네디가 가장 좋아했던 개는 몸집이 작은 웨일스 테리어 ‘찰리’였다.

당시 서신을 주고받을 만큼 가까워졌던 케네디와 흐루쇼프의 교류를 ‘냉전 시대의 로망스’라고 하는데, 찰리와 푸싱카도 로맨스의 꽃을 피웠다. 푸싱카는 새끼 4마리를 낳았다. 강아지들을 케네디는 ‘니키타 흐루쇼프’의 이름을 따서 ‘닉짱들(닉의 강아지란 뜻의 영어를 풀이한 것)’이라고 불렀다.

새끼 중 두 마리는 ‘중동의 어린이’에게 보냈고, 두 마리는 스쿼 섬에 있는 케네디의 본가에서 기르다가 주변에 줬다. 푸싱카의 후손은 아직 살아 있어서, 요즘 모스크바 교외의 츠베스다(Zvezda) 박물관에 다른 우주견들과 함께 살아 있는 모습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2010년 3월 18일엔 벨카와 스트렐카를 주인공으로 하는 3D 애니메이션 영화 ‘스페이스 독(Space Dog)-벨카와 스트렐카’가 개봉됐다. 우주견(犬)들의 우주 비행 5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가을 제4회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 때 상영됐다.

줄거리는 서커스단의 개 벨카와 떠돌이 개 스트렐카가 바이코누르 우주 발사 기지로 붙잡혀 와 훈련을 받은 뒤 우주 비행에 나서 운석 소나기가 쏟아지는 속에서 지구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주인공 스트렐카는 우주에 계속 남고 싶어했다. “아빠가 우주에 살고 있다”는 엄마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랬지만 로켓에 불이 붙어 할 수 없이 지구로 돌아온다. ‘아빠가 별에 살고 있다’고 믿는 대목은 57년 11월 3일,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우주 궤도로 진입했다가 죽은 최초의 암컷 우주견 ‘라이카’를 연상시킨다.

라이카는 스푸트니크 2호에 실려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서 발사됐다. 라이카는 우주공간 속에서 맥박, 호흡, 체온, 생리적 반응 등 여러 데이터를 제공한 뒤 우주선 안에서 죽었다. 스푸트니크 2호가 대기권 재돌입이 불가능하게 설계돼 어차피 라이카는 우주에서 죽도록 예정된 운명이었다. 스푸트니크 2호는 58년 4월 14일 대기권 재돌입 때 타서 없어졌다. 동물 애호가들은 ‘죽음의 길로 보내는 동물 학대’라며 동물 우주실험을 반대한다. 우주견 라이카를 추모하는 노래도 있는데, 들어보면 애절한 동심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라이카 이후에도 우주 실험에서 개들이 희생됐다. 소련은 ‘거리의 개’에서 모두 9마리의 암컷 우주견을 선발했었다.

61년 유리 가가린의 첫 유인 우주비행 직전, 로켓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당연히 불안해졌다. 그때 가가린을 안심시킨 것도 개였다. 61년 3월 25일 그가 타고 갈 보스토크 우주선과 똑같은 우주선을 타고 ‘스요스도츠카’라는 이름의 개가 마네킹과 함께 지구 궤도를 한 바퀴 돈 후 무사히 귀환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첫 우주비행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온 유리 가가린은 농담을 던졌다. “나는 아직 내가 우주에 다녀온 첫 인간인지 마지막 개인지 모르겠다.” ‘스요스도츠카’가 탔던 세계 최초의 우주캡슐이 올해 4월 12일 뉴욕 소더비 경매에 매물로 나온다고 한다. 낙찰가는 200만 달러에서 1000만 달러 정도로 예상된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누군가 도전해 보면 좋겠다.



권기균 공학박사. 미국 국립스미스소니언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지냈으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사)과학관과 문화 대표로서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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